전북 동부지역 고대 산성의 축성법을 통해 본 백제와 신라의 각축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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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조명일-
dc.date.accessioned2024-04-30T19:30:02Z-
dc.date.available2024-04-30T19:30:02Z-
dc.date.issued2023-12-31-
dc.identifier.citation조명일. (2023). 전북 동부지역 고대 산성의 축성법을 통해 본 백제와 신라의 각축 양상 . 전북학연구, 10, 221-254.-
dc.identifier.issn2713-5772-
dc.identifier.otherJSJ1008-
dc.identifier.uri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315-
dc.description.abstract본 글은 최근 활발하게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전북 동부지역 고대 산성의 축성법을 검토하여 축성 주체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가야 멸망 이후, 전북 동부지역에 서 벌어진 백제와 신라의 각축 양상을 파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먼저 전북 동부지역에서 발굴 조사된 고대 산성의 축성법과 출토유물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가야와 백제, 신라의 산성이 모두 존재함을 밝혔다. 전북 동부지역에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5세기경 마한 문화의 전통 속에 새롭게 가야 문화가 이입되었고, 주변국과의 활발한 문물교류를 통해 강력한 정치체로 발전하였다. 한반도 중추에 자리 잡은 전북 동부지역 가야 정치체는 문물교류의 허브이기도 했지만, 백제와 신라 사이의 군사적 완충지대이기도 하였다. 6세기 중반, 전북 동부지역 가야세력이 무너지자 백제와 신라는 이 지역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백제와 신라의 최대 격전지로 손꼽히는 아막성 전투와 가잠성 전투이다. 아막성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에 있는 성리산성으로 비정되며, 이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6~7세기 대 신라의 전형적인 축성법이 확인되었고, 다량의 신라 토기가 출토되었다. 문헌기록으로 전하던 아막성의 실체가 고고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셈이다. 가잠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설, 충북 영동군설, 충남 금산군설, 전북 무주군설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견해들은 고고학적 측면과 신성의 축성법이 배제된 채, 문헌기록에 근거한 음운사적 측면이나, 전투에 참여한 지휘관과 군사 등의 소속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에 필자는 기존의 학설과 문헌기록,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하여, 가잠성이 최근 신라 산성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 전북 동부지역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 재위기간에 벌어진 일련의 전투 무대를 전북 동부지역으로 보았다. 602년 백제는 4만 대군을 동원하여 신라의 아막성을 공략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신라는 그 기세를 몰아 전북 동부지역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자 다수의 산성을 축조하였다. 가잠성이 전북 동부지역에 존재한다면, 가잠성의 축조 역시 이즈음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는 605년 임실에 각산성을 축조하여 신라의 공세에 대응하였고, 아막성 패배의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611년 가잠성을 공격 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백제는 그 여세를 몰아 616년 패배의 아픔이 서려있는 아막성을 다시금 공략하여 함락시켰고, 함양의 속함성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여기에 위기를 느낀 신라는 덕산재(무주군 무풍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의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 고갯길)를 넘어와 가잠성 수복전을 전개하여 성공시킴으로서 금강 상 류지역에서 대한 지배권을 되찾는다. 624년 함양의 속함성을 포함한 6성을 공취한 백제는 628년 금강 상류지역을 회복하고자 가잠성를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 대한 승패는 전하지 않지만, 647년 백제 의자왕이 장군 의직을 시켜 무산성(지금의 무주군 무풍면)을 비롯하여 감물성·동잠성(김천시 일대로 추정) 등 3성을 함락시킨 것으로 보아 무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가잠성은 그 이전에 백제의 수중으로 다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 논문의 핵심은 아막성과 가잠성 모두 전북 동부지역에 있었다는 것이고, 두 지역의 전투는 금강 상류지역의 거점(가잠성), 섬진강과 남강 유역의 요충지(아막성)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옛 가야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북 동부지역 일대가 대규모의 철산지였다는 점도 전투의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dc.description.statementofresponsibilityopen-
dc.description.tableofcontents국문초록 1. 머리말 2. 전북 동부지역 고대 산성의 축성법과 축성세력 3. 가야멸망 이후, 백제와 신라의 각축 양상 4. 맺음말 참고문헌-
dc.publisher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dc.relation.ispartofseries전북학연구; 제10집-
dc.rightsBY_NC_ND-
dc.title전북 동부지역 고대 산성의 축성법을 통해 본 백제와 신라의 각축 양상-
dc.typeArticle-
dc.subject.keyword산성-
dc.subject.keyword백제-
dc.subject.keyword신라-
dc.subject.keyword가야-
dc.subject.keyword전북 동부지역-
dc.subject.keyword아막성-
dc.subject.keyword가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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