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철. (2024). 조선시대 전라도 거점고을의 형성과정 검토 : 지리지자료를 중심으로 . 전북학연구, 11, 63-94.
Series/Report no.
전북학연구; 제11집
Abstract
전라도는 신라-고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거점고을이 발달하여 타도보다 이른 시 기에 도명으로 정착하였다. 조선초기 계수관을 두어 전통을 계승하였고 점차 분야 별로 거점고을이 변화하였다. 첫째, 민정상 3품이상고을은 증가하여 12읍에 도달하였다. 그 연원을 추적해보 면 신라·고려의 전통적인 고을, 왕실과 인연으로 승격된 고을, 군사적 필요에 따라 재편된 고을 등이다. 둘째, 군정상 거진·진영은 8읍으로 귀결되었다. 민정장관이 통치하던 3품관 고을 을 대상으로 군사적 요충지에 거진을 설치하여 방어하였다. 진관제는 전란을 겪으 면서 실질적인 방어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진영으로 재탄생하였다. 셋째, 형정상 토포영은 5읍에 이르렀다. 포도의 직임은 목민관이 감당해야 하지 만 세력이 커서 일개 고을이 감당하지 못할 때 중앙에서 토포사가 차송되었다. 명 화적이 득세하자 토포영을 세우거나 요충지의 목민관에게 토포사를 겸직시켜 적도 의 움직임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평화가 지속되자 영장에게 토포사를 겸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이에 전시 군무와 평시 포도라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결과적으로 분야별로 중첩시켜보면 전라도는 7읍(전주·남원·나주·순천·제주·장 흥·여산)이 거점도시로 대두했다. 여기에 병영·수영까지 고려하면 9읍내외가 성장 하여 여러 읍을 관할하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