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의병기 전북지역 의병장 이성화의 항일투쟁 연구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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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이용철 | - |
dc.date.accessioned | 2025-05-09T19:30:38Z | - |
dc.date.available | 2025-05-09T19:30:38Z | - |
dc.date.issued | 2025-04-30 | - |
dc.identifier.citation | 이용철. (2025). 정미의병기 전북지역 의병장 이성화의 항일투쟁 연구. 전북학연구, 14, 219-249. | - |
dc.identifier.issn | 2713-5772 | - |
dc.identifier.other | JJS1408 | - |
dc.identifier.uri | 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460 | - |
dc.description.abstract | 본 연구는 정미의병기 의병장 이성화의 항일투쟁을 살펴본 것이다. 이성화는 전북 고부군 출신으로, 乙巳勒約과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 등으로 나라가 위기에 봉착 하자 의병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08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 이후 1909년 10월까지 투쟁의 근간을 마련코자 군수품 모집 등에 주력했으며, 지속적으로 일본 군경과의 교전을 수행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때때로 신보현 등 다른 의병장과의 연대 속에서 일제에 맞서기도 하였다. 활동 지역은 전북 고부를 중심으로 부안, 정읍, 순창, 태인, 금구, 김제, 만경, 담양 등 전북 서부와 일부 전남 북부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이성화 자체가 고부 출신이고, 그 부하들도 고부를 중심으로 전북 서부지역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것과 관계가 깊다. 단, 이성화는 동시기 활약했던 의병장 김동신이나 문태수 등에 비해 일본 군경과의 전투에서 좀 더 고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그의 의진이 거의 농민으로만 구성된 것과 관련이 있고, 또한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주로 평지를 중심으로 활약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성화는 호남의병의 일원으로서 전라북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맹활약하였고, 끝내 체포되거나 항복하지 않고 최후를 맞이한 의병장이었다. 하지만 이성화에 대한 개별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이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은 그의 활동을 규명하는 한편, 지금까지 전남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전북지역 의병장들의 활약상을 발굴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 - |
dc.description.statementofresponsibility | open | - |
dc.description.tableofcontents | 국문초록 1. 머리말 2. 거의와 항일투쟁 3. 의진 운영과 참여자 4. 맺음말 참고문헌 | - |
dc.publisher |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 - |
dc.relation.ispartofseries | 전북학연구; 제14집 | - |
dc.rights | BY_NC_ND | - |
dc.title | 정미의병기 전북지역 의병장 이성화의 항일투쟁 연구 | - |
dc.type | Article | - |
dc.subject.keyword | 의병 | - |
dc.subject.keyword | 이성화 | - |
dc.subject.keyword | 독립운동 | - |
dc.subject.keyword | 정미의병 | - |
dc.subject.keyword | 호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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