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황금시대 '위도파시(蝟島波市)' 재현의 의미와 추진방향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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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이동기 | - |
dc.date.accessioned | 2018-08-31T01:53:53Z | - |
dc.date.available | 2018-08-31T01:53:53Z | - |
dc.date.issued | 2018-08-31 | - |
dc.identifier.issn | 2508-688x | - |
dc.identifier.uri | 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483 | - |
dc.description.abstract | ○ 위도파시는 흑산도파시, 연평도파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파시 중의 하나로 조선전기부터 해방이후까지 형성된 대표적 해상어업시장임 ○ 파시(波市)는 조기 등 어류가 많이 잡히는 어장을 통해 해상위에 열리는 시장으로 일시적 취락이 형성되고 이동성을 지니고 있음 ○ 파시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최초로 등장하면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숙종실록 등에서 파시(波市), 파시평(波市坪), 파시전(波市田) 등으로 불리면서 사용되었음. 파시를 통해 어세(漁稅)를 받아 조세로 활용하기도 하였음 ○ 특히 위도파시는 매우 큰 조기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탁지지(度支志)에 언급될 정도로 서해안의 대표어장 중심지로 발달하였으며, 또한 위도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군사적 요충지로 숙종8년에 위도진이 설치, 53명의 수군이 주둔 ○ 위도파시는 일제강점기에 가장 호황시기였으며 그 당시에 어선 수백척과 수천명의 승조원 등이 위도에 머물면서 생활을 할 정도로 번성시기였으나 해방이후 점차로 어족자원의 고갈로 1970년대초 파시가 소멸되었음 ○ 그러나 위도파시는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3대 파시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가치의 복원 및 재현, 어업문화 재조명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역사의 기억만이 존재하고 있음 ○ 현재 연평도파시 및 흑산도파시는 파시어장 등을 복원하고 파시골목의 문화자원화를 통해 파시의 가치 재해석 작업을 하고 있고, 특히 연평도에서는 남북수산교류를 위해 공동해상파시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음 ○ 따라서 위도파시 재현을 위해 위도파시골목 재생사업, 서해파시해양문화권(가칭) 설정, 위도섬 발전계획 수립 및 활동가·전문가·주민 협력네트워크 구축, 파시복원을 위한 서해황금어장 복원 사업, 국립파시해양문화박물관 및 위도생활사 전시관 건립 등을 추진 | ko_KR |
dc.description.tableofcontents | Ⅰ. 위도파시는 우리나라 3대 파시 중 하나 Ⅱ. 위도파시 재현의 의미 Ⅲ. 위도파시 재현을 위한 추진방향 | - |
dc.publisher | 전북연구원 | ko_KR |
dc.relation.ispartofseries | 이슈브리핑;178 | - |
dc.title | 바다의 황금시대 '위도파시(蝟島波市)' 재현의 의미와 추진방향 | ko_KR |
dc.type | Article | ko_KR |
dc.subject.keyword | 위도파시 | ko_KR |
dc.subject.keyword | 파시 | ko_KR |
dc.subject.keyword | 해상어업시장 | ko_KR |
dc.subject.keyword | 어장 | ko_KR |
dc.subject.keyword | 해양문화 | ko_KR |
dc.subject.keyword | 어업경제 | ko_KR |
dc.subject.keyword | 관광자원 | ko_KR |
dc.subject.keyword | 해양관광 | ko_KR |
dc.subject.keyword | 문화자원 | ko_KR |
dc.subject.keyword | 어업문화 | k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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