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이후 전북지역 유생 습재(習齋) 최제학(崔濟學)의 항일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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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안성은-
dc.date.accessioned2022-07-06T19:30:00Z-
dc.date.available2022-07-06T19:30:00Z-
dc.date.issued2019-12-31-
dc.identifier.citation안성은. (2019). 을사늑약 이후 전북지역 유생 습재(習齋) 최제학(崔濟學)의 항일활동. 전북학연구, 1, 1-26.-
dc.identifier.issn2713-5772-
dc.identifier.otherJSJ0101-
dc.identifier.uri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785-
dc.description.abstract1905년(고종 42) 을사늑약 체결로 인해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끊는 한편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을 조직하여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전라도에서 을사늑약을 반대하여 일어난 최초의 의병활동은 태인의병(泰仁義兵)이다. 태인의병에 대한 선행 연구는 의병장인 최익현과 임병찬의 생애와 사상이나 태인의병의 전체적인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최익현과 임병찬의 역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태인의병을 총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실제로 태인 의병에 가담하여 조력했던 인물들을 발굴해야만 한다. 본고는 최익현을 최측근에서 조력한 인물인 전북 진안 출신 습재 최제학의 생애와 항일활동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최제학은 1901년 최익현과 사승 관계를 맺은 후 군수품 마련 및 최익현의 편지를 각 지역 유림들에게 전달하는 등 의병활동에 중요한 일을 도맡아 적극적으로 의병활동에 가담했으며, 최익현이 순국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항일활동에 힘쓴 인물이다. 따라서 최제학의 기록물인 「습재실기(習齋實紀)」를 통해 그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태인의병 전후의 항일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존의 최익현과 임병찬에게 집중되어 있던 선행 연구에서 벗어나 대한제국기 전북지역 의병사에 적잖은 역할을 한 최제학을 조명함으로써 소외된 이들의 항일활동을 파악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dc.description.statementofresponsibilityopen-
dc.description.tableofcontents국문초록 1. 머리말 2. 습재 최제학과 면암 최익현의 만남 3. 태인의병 활동 1) 태인의병 준비 2) 태인의병 활동 4. 태인의병 해산과 그 이후 항일활동 1) 구금과 스승 최익현의 죽음 2) 그 이후 항일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dc.publisher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dc.relation.ispartofseries전북학연구; 제1집-
dc.rightsBY_NC_ND-
dc.title을사늑약 이후 전북지역 유생 습재(習齋) 최제학(崔濟學)의 항일활동-
dc.typeArticle-
dc.subject.keyword을사늑약-
dc.subject.keyword호남의병-
dc.subject.keyword태인의병-
dc.subject.keyword항일운동-
dc.subject.keyword독립운동-
dc.subject.keyword습재실기-
dc.subject.keyword유림-
dc.subject.keyword경술국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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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학연구센터 > 전북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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