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동부 가야 봉화망과 그 의미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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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곽장근 | - |
dc.date.accessioned | 2022-07-06T19:30:07Z | - |
dc.date.available | 2022-07-06T19:30:07Z | - |
dc.date.issued | 2022-04-30 | - |
dc.identifier.citation | 곽장근. (2022). 전북 동부 가야 봉화망과 그 의미. 전북학연구, 5, 117-149. | - |
dc.identifier.issn | 2713-5772 | - |
dc.identifier.other | JSJ0504 | - |
dc.identifier.uri | 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822 | - |
dc.description.abstract | 문헌에 반파국은 봉후(화)를 이용하여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르고 신라 변방에 커다란 피해를 준 가야 소국으로 등장한다. 이제까지 전북 동부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로 가야 봉화의 구조와 봉화체제도 상당부분 복원됐다. 본래 반파국의 영역은 금강유역의 장수군과 진안군 상전면·동향면·안천면, 무주군 무주읍·안성면·적상면·부남면·설천면으로 금강에서 백제와 남대천에서 신라와 국경선이 형성됐다.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한동안 정치 불안에 빠지자 백제 영역인 진안군과 충남군 일대로 진출했고, 최전성기에는 금남정맥을 넘어 완주군 동북부까지 진출하여 금만정맥에서 백제와 국경을 마주했다. 513년부터 3년 동안 기문, 대사를 두고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르면서 남원시와 임실군, 순창군 등 섬진강유역으로 진출하여 섬진강유역에도 가야 봉화망을 구축했다. 가야 봉화망으로 반파국의 섬진강 유역 진출을 뒷받침해 주었다. 전북 동부 가야 봉화망을 문헌에 접목시켜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장수가야를 반파국으로 비정했다. | - |
dc.description.statementofresponsibility | open | - |
dc.description.tableofcontents | 1. 머리말 2. 가야 봉화 현황과 추정 봉화로 3. 봉화대의 구조 및 최종 종착지 4. 문헌으로 본 가야 봉화 역사성 5. 맺음말 | - |
dc.publisher |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 - |
dc.relation.ispartofseries | 전북학연구; 제5집 | - |
dc.rights | BY_NC_ND | - |
dc.title | 전북 동부 가야 봉화망과 그 의미 | - |
dc.type | Article | - |
dc.subject.keyword | 백제 | - |
dc.subject.keyword | 신라 | - |
dc.subject.keyword | 반파국 | - |
dc.subject.keyword | 장수가야 | - |
dc.subject.keyword | 가야 봉화 | - |
dc.subject.keyword | 봉화망 | - |
dc.subject.keyword | 봉화체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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