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신간회 전주지회의 설립과 활동을 조사함으로써 전주 지역 민족·사회 운동을 체계화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신간회 전주지회는 전국 지회 중에서 가장 먼저 설립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5월 10일 전국에서 두 번째로 지회가 설립되었다. 1920년대 전주지역에서의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있었고, 이 단체들 중에서 일부는 연합대회를 결의하여 신간회 지지를 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단체의 일부 인원들은 신간회 설립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신간회 전주지회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개신교인인 배은희가 회장을 맡았고, 지역 유지인 최경렬, 임택용,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전라도 위원인 이용기 등이 신간회를 주도하였던 점이 확인된다. 그러다가 대한제국기 관리 출신이었던 지역 유지 백용희가 회장을 맡았고, 신간회 복대표위원회 당시 전북 대표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그는 신간회 복대표대회 서기와 중앙집행 위원을 맡았다. 1929년대 말에는 사회주의자 김관제가 위원장을 맡으며 사회주의 자들이 주도했다. 즉, 초기에 하준기, 이평권 등 사회주의자들 또한 참여하였지만, 1929년 9월부터는 김관제, 김철, 김문옥, 장재섭 등이 참여하다가 11월 8일 개신교도인 신현창이 재정부장에서 사임함으로써 신간회 전주지회는 사회주의자들이 주로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 중 신간회 전주지회에 참여한 인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참여했던 전주천도교청년회 김영호가 유일하지만, 1928년 4월 13일 자격이 상실된다.
신간회 전주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전북지역, 나아가 전라 지역의 구심점 지회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주지역 1면 1분회 설치를 상정하고, 고산(高山), 삼례(三禮), 초포(初浦) 이동(伊東) 등에 분회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또한 신간회 전주지회는 지역사회의 현안을 논의하였는데, 군대 배치로 인한 국유지 가옥 철거 문제, 민중 경찰 보안 조합 관련 조사연구, 학교 폐지 반대 운동, 산업통계조사 기관설치, 누에고치, 면화지정 판매 반대, 무보수 부여 반대, 농민 및 여성운동 촉진, 3총 해금운동 등을 논의하였다.
신간회 전주지회는 1929년 말 집행위원회 금지를 시작으로 1930년 초의 여러차례 정기대회 시도 또한 금지된 이후 정식으로 개최된 정황이 보이지 않지만, 삼례 지역의 소작쟁의를 조사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목차
1. 머리말
2. 1920년대 전주 지역 민족·사회 운동의 현황
3. 신간회 전주지회 참여인물
4. 신간회 전주지회의 활동
5.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