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北學硏究 제16집(2025)  ·  The Journal of Jeonbuk Studies, Vol.16(2025)   |   2025년 12월 31일, 199-222쪽   |   DOI: https://doi.org/10.59592/JBST.2025.16.8

구영(具瑩)의 『죽유집(竹牖集)』에 나타난 완주의 장소성 연구1

김영미2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국문초록

죽유(竹牖) 구영(具瑩, 1584~1663)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 백현리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전북 완주의 시인이자 문인이다. 본 연구는 『죽유집』의 문학적 성취를 탐구하고, 그의 시를 통해 완주의 로컬리티적인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의 거의 모든 시에는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심상이 표현되고 있다. 고향인 완주 고산과 전북의 많은 장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죽유 한시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를 ‘고향’으로 잡고, 고향과 ‘고향 아닌 곳’으로 나누어서 고향과 타향의 장소성을 살펴보았다.

그는 고향에 깃들어 있을 때에도, 벼슬살이로 잠시 고향을 떠나 있을 때에도, 항상 고향을 읊었다. 그는 고향에 대해서는 항상 그곳의 경관과 경물, 고향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형상화한다. 고향을 떠나 있을 때 그의 시에는 고향에서의 모든 경험과 기억들이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동하여 고향이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완주 고산과 그 주변 장소에 대해서 강한 애착과 사랑을 드러내는 ‘장소애’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양 등 타향에서 죽유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수반된 ‘장소 상실’을 경험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죽유는 이러한 장소 상실을 표현하기 위해 한양의 구체적인 경관을 형상화하지도 않고 그곳에서의 추억과 기억도 서술하지 않는다. 이미 한양이라는 곳을 경험했지만, 그 경험을 구체화하지 않고 한양이라는 장소를 드러내지 않는 일종의 ‘탈장소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어 : 구영죽유집완주고향타향장소성

1. 머리말

죽유(竹牖) 구영(具瑩, 1584~1663)은 1584년 선조 17년에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 백현리에서 태어나 1663년 현종 4년 팔순의 나이로 사망한 전북의 유학자이다. ‘竹牖’라는 호는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이 주자(朱子)의 「경복승개창운(景福僧開窓韻)」 시3에서 어휘를 취하여 명명해 준 것으로, ‘본심의 밝음’을 의미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였는데 12세에 교리 소광진(蘇光震, 1566~1611)4에게 수학하였고, 14세 때에는 여흥에서 동년배 택당 이식(李植)과 더불어 유학하며 정을 쌓았으며, 25세에는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에게 나아가 배웠고,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구영은 1626년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유일(遺逸)로 천거를 받아 활인서 별제(活人署別提)로 처음 벼슬을 시작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종사관으로 복무하였고, 스승 김장생이 호소상사(號召上使)가 되었을 적에는 죽유를 불러 군무를 의논하기도 했다. 45세에 영사소무원종공신(寧社昭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어 사도직장에 임명되고 47세 때에 승직되어 부사과에 제수되었다. 1638년 55세에는 와서 별제(瓦署別提)에 제수되었으며 1639년에는 사헌부 감찰, 1641년 58세 때에는 회인 현감에 제수되어 3년 동안 현감의 직임을 맡았다. 그리고 1644년 60세 때에 완전히 고향 고산으로 귀향하였다.

죽유가 벼슬살이를 하거나 종사관이 되어 활동했던 햇수는 10여 년 이내였는데 이때를 제외하고 구영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결같이 고향을 지키며 고향에서 시를 짓고 여러 인물들과 교유하며 지냈다. 심지어 벼슬살이로 고향을 떠나 있었던 시기에도 그의 시는 거의 예외 없이 고향인 완주 고산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그야말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완주 고산의 시인이자 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에 대한 연구는 로컬리티로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는 주목할 만한 문학적 수준과 가치를 지니고 있어 한시의 문학적 성취 측면에서도 충분히 연구 대상이 될 만하다.

죽유는 사계 김장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유학했던 택당 이식, 같은 김장생의 문인이며 지역적 친연성이 있었던 전주 이씨 송교 이목(李楘, 1572~1646), 전주에 머물렀던 봉곡 김동준(金東準, 1573~1661) 등과 교유했다. 이목은 형조참판 대사헌, 동지경연사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김동준은 의금부도사 및 감찰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 문신이다. 또한 난리 때 인연을 맺었던 오리 이원익, 전라도 수군도절제사 김경석(金景錫),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부자, 익산 지역의 명망 높은 소세양 집안 등과도 교유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상당히 명망 높은 명공들이다. 이런 죽유의 교유 관계는, 죽유가 변방 산촌 출신이라는 점, 회인 현감이 최종 관직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봤을 때 상당히 화려하다고 할 만한데, 이는 사승 관계로 엮인 것이기는 하지만, 죽유 시의 문학적 성취와 그의 강직한 성품도5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죽유 구영과 그의 문집 『죽유집(竹牖集)』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죽유집』은 필자를 포함한 전공자 2인이 완주군의 의뢰를 받아 2019년에 비로소 완역하였고6, 이 번역서의 해제를 쓰면서 당시 전북대 국문과 이월영 교수가 쓴 논문 한 편이 구영에 대한 연구의 전부이다.7

죽유 구영의 시들은 그의 사후 1668년에 『죽유시집(竹牖詩集)』으로 간행되었다. 1664년 동춘당 송준길이 행장을 쓰고,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묘갈명을 썼다. 1668년에는 송시열이 다시 시집의 서문을 쓰고, 광주 목사 윤변(尹忭)이 주관하여 목판본으로 『죽유시집』을 간행한 것이다. 이후 1913년에 죽유의 글들이 민멸될 것을 우려한 후손들에 의해 재차 『죽유집』으로 간행된다. 후손 구석조, 구승조, 구연창, 구연태 등이 초간본 『죽유시집』에 유문과 공신록, 죽유의 연보, 죽유 시를 글씨로 쓴 송시열의 필첩, 죽유의 아들 구치성과 구치겸의 『관은당유고』, 『청천당유고』를 덧붙여 『죽유집』을 편찬한 것이다.

본 연구는 1차적으로 1913년에 편찬된 『죽유집』을 대상으로 하고 『죽유집』에 실린 연보 등을 참고하여 죽유 시에 형상화된 고향의 장소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거의 모든 시는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심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들 속에는 고향인 고산과 전북의 많은 장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드러난다. 따라서 구영의 한시들은 전북 완주 지역의 장소성과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을 살필 수 있는 최고의 자료라고 할 수 있다.

2. 장소의 경험과 장소 정체성

『죽유집』은 1668년에 간행된 초간본 3권 1책의 『죽유시집』에 유문 몇 편과 여러 사람의 글을 첨부하여 5권 2책으로 중간한 것이다. 본 연구는 완주군청이 소장하고 있는 중간본 『竹牖集』과 번역본 『죽유집』8을 저본으로 하여 문학지리학적인 입장에서 공간과 장소 분석 방법으로 구영의 시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이-푸 투안(Yi-Fu Tuan),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에드워드 케이시(Edward S. Casey) 등 ‘장소’ 학자들의 개념을 차용한다. 이들은 ‘장소 없는 장소(placeless place)’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 문명의 노마드 시대에도 장소는 여전히 인간의 중요한 갈망이라는 점을 인식한다.9 그리고 이들은 장소(place)를 공간(space)과 구분하여 사용한다. 이-푸 투안에 의하면, 인간의 경험과 의미가 아직 반영되지 않은 추상적인 세계를 ‘공간’이라 하고, 이 추상적인 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공간은 장소가 된다.10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장소 개념을 바탕으로 문학지리학적 측면에서 죽유의 시 세계를 살펴볼 것이다. 문학지리학은 지리학적인 현상을 바탕으로 문학을 연구하는 방법론 중의 하나인데 작품 속에 구현된 지리적 공간에 대한 경험과 의식을 살펴서 장소 정체성을 살피는 것이다. 장소 정체성은 3가지 구성 요소, 물리적 특징 혹은 외관, 관찰 가능한 활동과 기능, 의미 또는 상징들로 구성된다. 즉 장소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장소의 ‘경관’, ‘경험’, ‘의미’ 세 요소가 필요하며, 이들은 상호작용하게 된다. 이 중에서 물리적 환경인 ‘경관’은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예컨대 누가 봐도 아름다운 경관은 사람들이 그곳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장소 정체성은 경관 같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과 경험’,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가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11 객관적으로 초라하거나 보잘것없는 경관일지라도 그곳에서 어떤 따뜻한 환대의 경험을 하고, 그로 인해 그곳에 대해 특별한 의미나 가치를 느낀다면 그곳은 ‘따뜻한 환대’의 장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반면 객관적으로 아름답고 깨끗한 어떤 공간일지라도 그곳에서 적대적인 배제나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면 그곳에 대한 장소감은 달라질 것이다. 즉 어떤 공간이 장소가 ‘되게’ 하는 데 무엇보다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경험과 의식’인 것이다.

그런데 장소를 경험할 때 ‘내부인’으로 경험하는가, ‘외부인’으로 경험하는가가 장소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어떤 장소의 ‘내부’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곳’에 소속된다는 뜻으로, 장소에 둘러싸여 그곳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장소와 동일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곳의 깊은 내부에 있게 될수록 장소와의 동일시, 다시 말해 장소에 대한 정체성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부에서 장소를 경험한다는 것은 떠돌이나 여행자로서 멀리서 ‘그곳’을 지나치며 스치듯 바라보는 것과 같다.12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것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장소 경험을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구분으로, 장소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단초가 되기 때문에 죽유의 고향 시 혹은 타향 시를 살펴볼 때 주요하게 참고할 것이다.

한편 장소의 내부를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경험 방식에 따라 장소의 의미나 깊이는 달라질 수 있다. 먼저 냉철한 관찰자로서 감성적 개입 없이 행동적으로만 내부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어떤 장소에서 십수 년간 정주하였지만 비자발적 이주로 인해 항상 ‘이곳’이 아닌 ‘저곳’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다음은 어떤 곳에서 그곳 문화의 온전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의식은 유지하되, 행동적·감성적으로 모두 개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민 2, 3세대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원주민이 된 것처럼 장소에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내부를 경험했지만 장소 의미는 각각 다를 수 있는데 첫 번째의 경우, 신체적으로는 그 장소에서 활동하지만 감성적으로는 그곳에 동화되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는 행동적·감성적 개입은 하지만 그곳의 완전한 구성원은 되지 못한 경우이며, 세 번째의 경우에는 실존적 내부성을 경험하는 경우이다. 이 세 가지를 에드워드 렐프는 각각 행동적 내부성, 감정 이입적 내부성, 실존적 내부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3

이렇게 장소를 내부인으로 경험하느냐 외부인으로 경험하느냐에 따라, 또 내부도 어느 차원에서 경험하느냐에 따라 장소에 대해 느끼는 장소감은 다를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장소에 대해 긍정적인 강한 애착이나 사랑인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애)가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 장소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장소 상실’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그곳에 대한 경험이 억압적 혹은 부정적인 형태일 때는 토포포비아(topophopia, 장소혐오)가 형성되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문학지리학적 입장에서 『죽유집』을 분석적으로 독해하여 전북 완주 지역의 장소성을 탐색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죽유 구영과 고향인 완주 고산의 정서적 유대가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다른 한편으로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장소 상실이 시적으로 어떻게 체현되는지 그 양상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또한 장소성 분석을 위해 고향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애정의 표출 양상도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장소 정체성 형성에 ‘경험’ 요소가 중요하다고 할 때, 장소 경험이 온전히 공간 그 차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공간에는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어떤 장소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을 경험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장소 경험의 영역에는 그곳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의 추억이나 기억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죽유 시의 장소성을 탐구하는 데 죽유가 거처했던 고향과 타향뿐만 아니라 죽유의 고향 사람들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3. 고향 완주의 장소성

죽유 구영 한시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이라는 장소를 시적으로 형상화할 때, 고향의 내부에서 고향을 경험할 때와 고향 밖, 즉 외부에서 고향을 바라볼 때의 장소감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내부에 있든 외부에 있든 ‘고향’이 주요 모티프로 작동하여, 고향을 중심으로 ‘고향 아닌 곳’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고향이 아닌 곳’은 죽유가 시를 쓰는 당시에 머문, 타향의 공간인데, 이 공간에 대한 형상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본 장에서는 죽유가 활인서 별제로 처음 벼슬살이를 시작하는 1626년(43세) 시점부터의 시들을 대상으로 고향을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되는지 탐색할 것이다. 『죽유집』의 시들은 대부분 구영이 벼슬을 시작한 이후의 것들이다. 벼슬하기 이전의 시들도 있기는 하지만 10수 내외로 적은 분량이다.

1)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타향의 탈장소화

고향은 자신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죽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42세 무렵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그가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느끼는 장소감과 고향에 대한 심상의 추이를 살펴보자.

다음은 구영이 1626년 활인서 별좌가 되어 처음으로 관직에 나가게 되었을 때 읊은 「병인년 활인서 별좌로 부임하는 아침에 전별하는 자리에서 차운하다(丙寅以活人暑別坐赴 朝餞席次韻)」 시이다.

세상 구제하는 일 내가 어찌 감히 하리오 濟世吾何敢작은 관직인 활인서가 알맞네 微官稱活人숨어 살던 곳을 물러나 하직하고 却辭棲隱處느즈막에 한나라 조정 신하가 되네 晩作漢廷臣14

죽유는 기본적으로 고향 완주 고산을 은거하는 곳인 ‘서은처(棲隱處)’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은처는 시끄러운 세상살이에서 한발 물러나 은거한다는 표현으로, 벼슬길에 나가기 직전 죽유에게 고향은 숨어 살던 곳 ‘서은처’ 정도의 심상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다가 한양이라는 낯선 타향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면서, 죽유는 타향에서의 장소감을 확인하고 고향을 근원적인 그리움의 장소로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는 벼슬살이를 위해서 고향을 떠나 있었던 시기에 고향에 대한 다수의 시를 남겼다.

「고향에서 온 편지를 읽다 見鄕書」수각교 근처 꿈 水閣橋邊夢삼기정가에서 나네 三奇亭畔飛오늘 아침 고향에서 소식 있으니 今朝有鄕信천 리 밖에서 관복을 보냈네 千里寄朝衣15

수각교(水閣橋)는 현재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 한양 남대문 근처이며, ‘삼기정(三奇亭)’은 고향인 완주 고산 지역에 있는 정자이다. 죽유 구영은 꿈속에서 삼기정가를 나는 장면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삼기정은 냇물, 돌, 소나무 세 가지 기이한 것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으로, 구영에게는 고향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의 하나이다. 현실 세계에서 화자 구영의 몸은 수각교에 있지만 꿈속에서도 그리며 날아가고 싶은 장소는 삼기정이다. 고향에 대한 죽유의 그리움이 고향의 가족에게도 이심전심으로 닿았는지 죽유가 삼기정을 나는 꿈을 꾼 날 아침에 고향에서 편지[鄕信]와 함께 관복을 지어 보내온다.

이 시는 1구 ‘수각교’를 제외하고, 시 전체가 온통 고향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휘들로 채워져 있다. 2구의 ‘삼기정’, 3구의 ‘고향 소식’, 4구의 ‘천 리 밖’이나 ‘관복’이 모두 고향을 직간접적으로 지칭하거나 은유하고 있다. 관복은 언뜻 보면 관직 생활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시대 남편이 고향집을 떠나 한양이나 기타 지역에서 벼슬 생활을 하는 경우, 고향에서 아내가 관복을 지어 보낸다. 따라서 ‘관복’은 고향과 고향의 아내를 은유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죽유의 여러 시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천 리 밖’, ‘몇 천 리’라는 거리감을 드러내는 어휘가 주목된다. 죽유의 인식 속에서 ‘고향’은 한양에서 ‘천 리’ 멀리 아득히 떨어진 장소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연히 읊다 偶吟」청운의 뜻 이룰 기량과 학문 없으나 靑雲無器業백발되어 인연을 얻었네 白髮有因緣나그네로 한양에서 잠든 밤 旅枕長安夜고향 생각 길은 몇 천 리네 歸心路幾千16

이 시의 1, 2구는 학문과 기량이 부족한 화자가 거의 백발이 된 늦은 나이에 벼슬을 얻어 한양에 오게 되었다는 겸손을 표현한 듯하지만, 이어지는 3구를 보면 현재 벼슬을 하고 있는 한양이라는 곳에 대해 ‘나그네’로서의 장소감을 드러낸다. ‘여침(旅枕)’은 ‘나그네로서 객지에서 자는’ 것을 뜻한다. 죽유가 한양[長安]을 내부인으로 깊이 경험하고 있다면 자신을 나그네로 형상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3구에서 나그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4구에서는 자연스럽게 나그네가 아닌 정주할 ‘고향’을 상정하게 되는데, 돌아가고 싶은 고향은 ‘몇 천 리’ 밖에 있다. ‘나그네’와 ‘몇 천 리’를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구영은 비 내리는 밤, 스산한 가을날, 눈 내리는 밤, 숙직하는 밤 등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고향을 떠올린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상대적으로 현재 몸담고 있는 장소에서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바탕으로 부각된다.

「한양의 비 내리는 밤에 長安夜雨」유월 한양에 비 내리고 六月長安雨삼경에 나그네 그리움 많네 三更客思多고향은 구름과 물 건너서이니 故園雲水外천 리 밖에서 진실로 시 괴롭게 읊조리네 千里正吟哦17

위 시에서 현재 죽유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벼슬 생활을 하고 있는 ‘한양’이다. 타향인 한양에서 한밤중까지 잠들지 못한 ‘삼경의 밤’은 나그네가 고향을 떠올릴 만한 시간이다. 게다가 ‘비가 내리는’ 밤에는 나그네의 상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적막한 상황이다. 죽유는 이에 직접적으로 ‘나그네는 상념이 많다(客思多)’고 표현하고 있는데 나그네의 상념이란 나그네로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나그네로서 느끼는 수심일 것이다. 죽유가 처한 시공간과 상황이 모두 ‘그리움’이나 ‘외로움’을 표현하기에 적절하게 조합되어 있다. 이때 고향은 ‘천 리 밖’ 구름과 물을 건너야 가 닿을 수 있으니 화자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길은 ‘시를 괴롭게 읊조리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위 시는 제목에서부터 ‘한양’이라는 공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한양에 비가 내린다’는 선언 외에 구체적으로 한양을 체험하는 표현은 없다. 어떤 공간에서 구체적인 경험이 드러나지 않을 때 그 공간은 여전히 추상적이어서 ‘장소’가 되지 못하며, 외로움에 휩싸이는 장소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현재 거처하고 있는 공간의 실체는 축소된다.

눈 내리는 밤에는 더욱 고향에 대한 상념에 젖어든다.

「눈 내리는 밤 雪夜」눈 가득한 한양, 갠 달은 밝고 雪滿長安霽月明고향 꿈을 깨니 밤은 처량하고 맑네 鄕園夢斷夜凄淸사람 만나면 고향 가고픈 뜻을 말하지 말게나 逢人莫說思歸意고향 그리움 이야기하면 진정이 아닌 듯하니 說到思歸似不情18

이 시는 달콤한 고향 꿈을 꾸다가 깨니 타향의 밤은 더욱 또렷하게 처량해짐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3, 4구에서는 고향이 그리워도 그 그리움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말로 이야기해 버리면 진정이 아닌 듯 가벼워진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실한 사랑이나 진정한 그리움은 그것을 말로 ‘사랑한다.’ 혹은 ‘가고 싶다’로 표현하는 순간, 무한대의 그리움과 사랑이 그 글자에 갇혀 한정되기 때문에 ‘진정’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언부진의(言不盡意)’, 즉 말이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언어적 한계를 말하면서 그만큼 말로는 다하지 못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다음은 벼슬살이를 하던 중 한양에서 가을을 맞아 읊은 시이다.

「한양에서 가을날 長安秋日」시내의 물고기와 게는 가을이어 잡기 좋고 一川魚蠏秋宜捕온 골짜기의 솔바람 소리를 밤이면 듣겠지 萬壑松聲夜可聽꿈속의 혼이 기러기 따라가는 것 금할 수 없어 魂夢不禁隨鴈去어젯밤 5리, 10리를 날아갔네 昨宵飛過短長亭19

보통 일반적으로 한시에서 ‘가을’에 대한 심상은 쓸쓸함이나 외로움, 결실의 풍요로움, 경관 형상화 등으로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는데, 위 시는 굳이 따지자면 가을 경관을 읊은 것이다. 가을날 시내의 물고기와 게는 잡기 좋고, 온 골짜기의 솔바람 소리가 가득 들리는 가을밤이다.

그런데 문제적인 점은, 그 경관이 한양의 것이 아니라 고향의 것이라는 것이다. 시의 제목은 ‘한양에서의 가을날’이지만 ‘한양’의 경관이나 경험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몸은 한양에 있지만, 온 골짜기 솔바람 소리 들리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금할 수가 없어서 꿈속의 혼이 기러기를 따라 날아간다는 내용인 것이다.

이렇듯 시인 죽유의 몸은 현재 ‘여기’ 한양에 있지만 마음은 ‘저기’ 고향 완주 고산을 그리는 시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런 시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현재 죽유가 몸담고 있는 한양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장소성이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여기가 아닌 ‘저기’ 고향에 대한 장소성이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이곳 한양은 그냥 ‘외로운 곳’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저곳 고향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고향은 ‘시내의 물고기와 게를 잡기 좋은 곳’, ‘밤에는 온 골짜기에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장소이지만 한양은 구체적인 장소성을 잃는다.

이러한 특징이 다음 시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① 「추석 秋夕」한양에서 추석을 지내는 마음은 어떠한가 長安秋夕意如何초가집에 홀로 앉아 있노니 살쩍 더욱 희어지네 獨坐茅簷鬢欲華멀리서 상상하노니 조카는 묘지를 쓸고 遙想阿咸掃墓地산 그득한 소나무 잣나무엔 석양이 짙겠지 滿山松栢夕陽多백수에 미관말직으로 무슨 일을 이루리 白首微官成底事한양의 팔월에 고향 생각 배로 나네 長安八月倍思家한밤중에 앉아 산속에서 더불었던 일 그리워하나니 中宵坐想山中伴탁주와 황화에 흥이 더욱 많았었지 濁酒黃花興轉多20
② 「한양에서 추석날 長安秋夕」한양 가깝다 말하지 마오 莫道長安近풍운 만나기 쉽지 않다네 風雲未易逢하늘가 나는 기러기 울음소리에 애끊고 斷腸天際鴈베갯머리 귀뚜라미 소리에도 귀 기울이네 側耳枕邊蛩고국은 천리에 아득하고 故國迷千里가을날 회포는 다시 만 겹이네 秋懷復萬重응당 알겠나니, 언덕 위 應知丘壠上겨울 소나무에 까마귀 모여 있겠지 烏鳥集寒松21

추석이나 청명절, 칠석, 중양절, 단오 같은 특별한 날에는 평소 별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던 이들도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워하게 되는 때이다. 위 두 편의 시는 죽유가 추석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회포를 읊고 있는 시인데 그 속에 고향과 고향이 아닌 곳에 대한 장소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①에서는 8월 15일 달 밝은 추석날 밤에는 ‘고향 생각이 배로 나는 날’임을 전제한다. 고향 그리운 마음에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화자의 눈에 들어오고, 고향에 펼쳐질 풍경과 사람들을 상상한다. 조카는 묘지를 쓸고 있을 텐데 산 가득한 잣나무, 소나무에 석양이 짙어질 테고,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과 추석에 탁주와 국화꽃(황화)의 흥취에 빠졌던 일을 그리워한다. 고향의 장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경험과 행동이 드러나는 반면 현재 살고 있는 이곳 한양은 ‘초가집’이라는 공간 외에는 어떤 경관이나 경험도 드러나지 않는다.

②에서도 추석날 고향은 ‘언덕 위에 겨울 소나무에 까마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구체성을 띤다. 반면 한양의 장소는 구체적인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죽유의 다른 시들에서도 ‘한양’은 경관, 경험, 의미 세 요소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중양절 감회 重陽感懷」희끗희끗한 귀밑머리, 서리 맞은 잎사귀는 모두 가을인데 鬂華霜葉一般秋구월 구일 텅 빈 재실에서 먼 곳 나그네는 근심스러워하네 九日空齋遠客愁멀리서 그리워하나니, 고향은 오늘 밤 즐거이 遙想故園今夕樂동쪽 울타리에서 국화꽃을 몇 사람이나 머리에 꽂을까 東籬花揷幾人頭22

중양절에 고향 사람들은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꽃을 머리에 꽂을 것’이라고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고 있지만 한양의 공간은 다만 ‘재실’일 뿐, 재실의 구체성은 결여되어 있다. ‘서리 맞은 잎사귀’ 정도가 한양의 경관에 해당되는데 이는 외로움을 배가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서리 맞은’과 ‘텅 빈’이 ‘나그네의 근심’으로 이어지면서 한양의 재실은 진정한 장소감을 주지 못하는 ‘장소 상실’의 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죽유는 일상생활 속 오이를 먹으면서도, 눈 내리는 밤, 가을날 풀벌레 우는 날에도 오매불망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23 죽유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기 위해 동원하는 시어들은 ‘나그네’, ‘떠돌이’, ‘천 리 밖’, ‘기러기의 애끊는 울음소리’, ‘귀뚜라미 소리’ 등이다. 이는 죽유가 한양에서 외부적 존재로, 떠돌이나 나그네 같은 존재로 살아가며 귀뚜라미나 기러기의 소리를 ‘애끊는 울음소리’로 듣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죽유 구영의 ‘고향’을 읊은 시들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고향은 선험적으로 조상의 터와 부모님이 있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여겨지는가 하면, 한편으로 고향은 가난이나 답답함 등의 이유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고역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24 즉 고향은 구심력과 원심력이 작동하는 길항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인데, 죽유 구영의 시 세계에서 고향은 강력한 구심력이 작동하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쓸 때 장소성 측면에서 2가지 방향성을 띨 수 있다. 먼저, 실향민이나 전쟁 난민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한 비자발적 이주 같은 ‘장소 전치(displacement)’가 일어난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고향을 그리워하되,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깊은 슬픔과 아픔으로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죽유 구영처럼 가까운 미래에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경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깊은 슬픔과 아픔 대신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을 환기시킨다. 추억과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공간으로 처리하는 대신 고향은 경험의 장소로서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한편 고향과 대치되는 한양은 벼슬살이를 하면서 실제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지만, 감정적으로 한양에 동화되지 못하여 항상 외로움에 감싸인 곳, 걱정스럽고, 삼경에 잠 못 드는 곳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죽유의 환로시들이 대부분 비슷한 심상을 보여준다. 시인 죽유의 몸은 현재 ‘여기’ 한양에 있지만 마음은 ‘저기’ 고향 고산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때 죽유는 ‘저기’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초점화하고 한양에서의 장소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 한양을 탈장소화(deplacialization)하는 방식을 택한다. 한양의 구체적 배경이 되는 경관과 경험을 형상화하지 않고, 추상적 공간으로 머물게 하여 한양 공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2) 고향 경관의 실체성과 토포필리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타향살이의 수심을 견디는 힘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과 그곳에 곧 돌아가리라는 희망에서 나온다. 죽유는 46세 때 자신의 일을 대행한 관원의 실수로 파직되자 고향 ‘서은처(棲隱處)’로 처자를 이끌고 돌아온다.25

고향은 가족들과 함께 돌아올 궁극적인 안식처 같은 곳이다. 고향은 ‘향기로운 풀이 있는 곳이며 ‘산촌에 밝은 햇살 비치고’, ‘향기로운 풀이 뜰가에 가득한 곳’26으로, 파직의 슬픔보다는 평안과 안도의 느낌을 갖게 한다. 그곳은 ‘베개를 높이 베고 쉴 수 있는 곳’이다.

삶은 미나리 먹을 수 없고 煮芹無可口보리밥 지어 먹으니 이전의 살이 빠지네 炊麥失前肥온갖 일 제치고서 베개 높이 베고 쉴 뿐이니 萬事惟高枕산바람에 비가 사립문에 가득하네 山風雨滿扉27

고향 고산은 보리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곳으로, 곤궁함으로 인해 살이 빠지는 곳이며, ‘산풍(山風)과 비가 사립문에 가득한 곳’이지만 ‘베개 높이 베고 쉬는’ 생활이 가능한 곳이다. 넉넉하지 않은 변방의 벽촌이지만 어떤 공간 안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은 그곳을 안식처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하다. 객관적으로 그 장소가 보잘것없거나 혹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 처한 곳일지라도 ‘베개 높이 베고 쉴 수 있는 곳’은 원주민으로서 무의식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장소이다. 그곳과 완전하게 동일시되어 실존적 내부성을 경험하는 장소인 것이다.

「운제에서 백운사 혜원선사 시에 화답하다 雲梯和白雲寺惠遠師詩」내가 고산 곳곳의 산을 사랑하나니 吾愛高山處處山운제는 어찌 백운 한가로운 것과 닮아 있는지 雲梯何似白雲閑운제에서 백운사 스님과 만나게 되어 雲梯逢着白雲釋백운의 가을날 차가움을 말하네 却話白雲秋日寒28

운제(雲梯)와 백운(白雲) 어휘가 반복되며 의미 맥락이 이어지는 시이다. 여기에서 운제는 고산의 별칭인데 완주군 고산은 곳곳에 빼어난 산들이 있는 곳이다. 죽유는 ‘고산 곳곳의 산’을 사랑한다고 선언하며 운제가 ‘백운(白雲) 한가로운 흰 구름과 닮아 있다’고 표현한다. 물론 절의 이름 ‘백운사’의 언어유희이기는 하지만, 죽유에게 고산은 백운처럼 한가롭고 평화로운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그런 백운이 있는 고산의 산들은 토포필리아적인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한가하게 거하며 흥이 넘쳐 閒居漫興」물 흐르는 푸른 산에 하나의 초당 流水靑山一草堂정원 가득한 소나무 대나무 울창하네 滿園松竹欝蒼蒼석양에 양 치는 객 멀리 보이나니 斜陽遠見牧羊客아마도 화산의 황씨인가 하네 疑是華山身姓黃29

이 시에서 말하는 초당은 정안당(靜安堂)으로 보인다. 정안당은 죽유가 51세 때 완성하고 송시열의 편액을 받아 걸고 그곳에서 강학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던 곳이다. 이 초당은 한가로움이 위에서 말한 백운(白雲)과 닮아 있는 곳으로, 멀리서는 석양 무렵 양 치는 나그네가 보인다. 앞서 한양에서 읊은 시들 속에 나타나는 ‘나그네(客)’는 모두 화자 자신을 일컬었는데 여기에서의 객은 화자 자신이 아닌 타자로, 객은 한가로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마치 신선이 사는 장소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화산(華山)’은 원래 고산의 지명이면서 동시에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황씨는 황초평(黃初平)이라는 신선인데 자신이 살고 있는 화산을 신선이 사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안당은 한가로움으로는 신선이 살만한 곳으로, 정원 가득한 소나무 대나무처럼 울창한 흥취를 갖춘 곳이 된다.

장소에 대한 애착은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의 환대를 기반으로 한다. 고향 사람들, 혹은 고향 그 자체일 수 있는 가족들의 환대는 고향에 대한 토포필리아를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고향과 이별한 지 삼 년 만에 故國三年別초가을에 필마로 돌아가네 新秋匹馬歸문에 들어서자 기쁜 마음 흡족하니 入門懽意足어린아이들 다투어 옷깃을 당기네 童稚競牽衣30

이 시는 죽유가 벼슬 중에 잠시 휴가를 얻어 고향에 다녀가면서 남긴 시이다. 고향을 떠난 지 삼년이 지나 초가을에 고향을 찾아오는데 문에 들어서자 ‘기쁜 마음 흡족하고’, 더불어 어린아이들이 반가움에 서로 다투어 죽유의 옷깃을 당기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다. 죽유가 고향집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기쁜 마음과 아이들이 죽유를 반기는 명랑한 환대가 ‘다투어 옷깃을 당기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환대의 장소인 고향에서 죽유는 최종적으로 백 년의 인생을 보낼 것을 표명한다.

「만흥 漫興」잡초 우거진 작은 길 누군들 다스릴 수 있으리 蕪逕誰能屈한가롭게 거하니 병도 쉽게 치료되네 閑居病易瘳숲의 정자는 큰집에 비견하고 林亭比廣廈채소의 새싹은 진수성찬보다 낫네 菜甲勝珍羞대나무를 보고 청안을 뜨며 看竹開靑眼바람 맞으며 흰머리 드러내네 迎風露白頭백년 인생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百年渾在此외물에서 다시 무엇을 구하리 外物更何求31

고향 숲의 작은 정자는 큰집에 비견할 만하고 채소 음식도 진수성찬보다 낫다고 하면서 한가롭게 거하니 ‘병도 쉽게 치료되고’ ‘청안이 열린다’고 한다. 죽유에게 고향은 안식처의 의미와 함께 치유가 가능한 곳인 것이다. 고향이 모든 이들에게 구원과 치유, 안식처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즉 고향을 시적으로 형상화할 때 모든 이들이 고향을 토포필리아로 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 고향은 고역의 장소로, 떠나고 싶어도 부모 형제가 있는 곳이라 벗어날 수 없는, 곤궁하고 신산한 삶의 터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데 죽유 시는 대부분 고향과 고향 주변 장소에 대해서 절대적 애착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고산의 고향집은 진수성찬을 먹을 수는 없지만 한가로운 흥을 즐기며 쉴 수 있는 안식처이며, 고산 곳곳의 산들은 매우 사랑스러운 곳으로 도솔천의 절들이 들어설 만한 장소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고산은 ‘백 년 인생의 모든 것이 있는 곳’이며, 그래서 죽유는 완주에 안거하며 외물을 욕망하는 삶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죽유가 고향으로 완전히 귀향한 후 고산 근처에 있는 화암사를 방문하고 읊은 시로, 장소적 특징을 잘 살려 문학적 성취를 이룬 시이다.

「화암사에서 노닐다 遊花巖寺」아스라이 먼 화암사 迢遞花巖寺부여잡고 오른 느낌의 여운 躋攀感遇餘때는 동지 지난 후고 時當冬至後자취는 눈이 막 갠 처음이네 跡趁雪晴初돌은 이끼 무늬 끼어 미끄럽고 石戴苔紋滑창은 구름 그림자 머금어 텅 비었네 窓含雲影虗상방에는 장로 없는데 上房無長老밝은 달빛은 뜰에 가득하네 明月滿庭除32

이 시에는 화암사의 장소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아스라이 먼 곳에 있는 화암사는, 부여잡고 오를 만큼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시인이 방문한 때는 동지가 지난 후이고, 눈이 막 갠 뒤 시인이 그 눈을 처음 밟는다. 화암사의 돌은 이끼가 끼어 미끄럽고 창문에는 구름 그림자가 머물러 있는데 상방에는 스님은 없고 밝은 달빛만 뜰에 가득하다.

장소의 경관을 묘사하듯이 형상화하고 있는데, 거기에 시인의 장소 경험이 고스란히 경관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부여잡고 오른 느낌의 여운(躋攀感遇餘)’이라는 구절 속에 아득히 높은 곳에 올라 화암사에 도착한 뒤에 느끼는 시인의 감흥이 한껏 전달된다. ‘나는 화암사를 사랑한다’는 식의 언급은 없지만, 이 시 속에는 화암사에 대한 화자의 감동과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죽유가 고향을 읊은 시들을 살펴보았는데, 죽유의 고향 시들을 정리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구체적인 지명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고향의 풍광을 읊은 시가 대단히 많다. 미나리, 보리밥, 산바람, 사립문, 비, 개구리 울음소리, 뱀, 길어지는 해, 치자나무꽃, 도리화, 봄추위, 매화, 초당, 제비, 토끼, 꾀꼬리, 푸른 산, 매미, 뽕잎주, 서리, 섬돌, 가을, 봄 등등 죽유 구영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 또는 그 공간 주변의 풍광들을 생동하게 하여 그곳의 실제성을 증거한다.

한편 실제 지명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장소를 노래하고 있는 시들도 상당히 많다. 삼기정(三奇亭, 고산면에 있는 정자), 운산(雲山, 완주 화산면 지명), 운제(雲梯, 고산의 별칭), 백운사(白雲寺, 고산에 있는 절), 주홀헌(柱笏軒, 완주 객사), 완주 용계, 화산, 정안당(靜安堂), 화암사, 안심사 적설루, 백현사 등이 시제로 쓰이고 있으며 그밖에 주변 지역인 익산 용화산, 전주의 견훤고성 등도 등장한다. 특히 삼기정이나 정안당, 화암사, 안심사, 백현사 등은 현재에도 남아 있어, 이러한 시들을 통해 조선시대 고산의 장소성을 살펴보는 데 용이하다.

지금까지 고향에 대한 죽유 구영의 장소 정체성을 살펴보았는데 고향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나 고향 풍경을 그린 시들에는 애정이 가득 담긴 온갖 자연물이 등장한다. 시어들을 살펴보면, 미나리, 보리밥, 산바람, 사립문, 비, 개구리 울음소리, 뱀, 치자나무꽃, 도리화, 매화, 초당, 제비, 토끼, 꾀꼬리, 푸른 산, 매미, 뽕잎주, 서리, 섬돌 등등 구체적인 대상물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자연물이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낯선 대상’이 아니라 그것들은 직접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실체들이며, 따라서 이들 자연물이 현존하는 고향 고산도 형이상학적이거나 추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죽유는 이러한 고향에 대한 애착을 이후 고향 사람에 대한 애착으로 잇는다. 『죽유집』에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지역에서 이웃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지역에서 학문적으로 교유하는 지인들, 지역 여러 사찰의 승려들에 대해 읊은 시들도 있으며 교유했던 문인들의 시에 차운한 시, 지인들과의 전별시, 안부시 등이 있다. 그 시들 속에는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먼 길 떠나는 이에 대한 위로 같은 따뜻함이 묻어난다.

죽유의 따뜻한 인간미는 만시에서 더욱 발현되는데 『죽유집』에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죽음을 애도한 만시가 양적으로 유난히 많다. 그의 만시는 대부분 죽유가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완전히 귀향한 60세 이후의 것들로, 형, 아내, 이종형제, 조카, 손자 등의 가족과 친척부터 동향의 벗들과 지인들, 벼슬길에서 친분을 맺은 벗들, 사찰의 스님들, 문하에서 공부하던 서생들, 소씨나 국씨 같은 지방 유지까지 매우 다양하다.

4. 맺음말

지금까지 본고에서는 죽유 구영 시에 형상화된 고향의 장소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고향은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는 장소감을 지닌 곳이다. 오랜 세월, 세대를 이어서 정서적 신뢰를 구축한 장소로서, 공동체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긴밀한 영향을 준다. 죽유 구영에게도 ‘고향’은 특별한 장소로 기능하며, 그의 시에서 ‘고향’ 완주는 매우 특별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죽유의 거의 대부분의 시에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심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들 속에는 고향인 고산과 전북의 많은 장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죽유 구영 한시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를 ‘고향’으로 잡고, 고향과 ‘고향 아닌 곳’으로 나누어서 고향과 타향의 장소성을 살펴보았다.

그는 고향에 깃들어 있을 때에도, 벼슬살이로 잠시 고향을 떠나 있을 때에도 항상 고향을 읊었다. 고향에 있을 때에는 고향의 경관과 경물, 고향 사람들을 형상화하였고, 고향을 떠나 있을 때에는 고향의 모든 것들이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동하여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리움’으로 드러난다. 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완주 고산과 그 주변 장소에 대해서 강한 애착이나 사랑을 드러내는 토포필리아(장소애)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향 아닌 한양 등지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 한양에서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수반된 ‘장소 상실’을 경험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죽유는 이러한 장소 상실을 표현하기 위해 한양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경관을 형상화하지도 않고 그곳에서의 추억과 기억도 서술하지 않는다. 이미 한양이라는 곳을 경험했지만, 그 경험을 구체화하지 않음으로써 한양이라는 장소를 드러내지 않는, ‘탈장소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장소를 경험한 적이 없는 ‘무장소성(placelessness)’과는 다른데, 장소를 경험했지만 경험하지 않은 것처럼 처리하는 일종의 ‘무장소화’라고 할 수 있다.

죽유가 벼슬살이를 하거나 종사관이 되어 고향을 떠났던 햇수는 10여 년 이내였는데 이때를 제외하고 구영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을 지키며 고향에서 시를 짓고 여러 인물들과 교유하며 지낸 인물이다. 벼슬살이로 고향을 떠나 있었던 시기에도 그의 시는 거의 예외 없이 고향인 완주 고산에 대해 읊은 그야말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완주의 시인이자 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시는 로컬리티적인 가치가 있고, 게다가 문학적 성취도 상당하여 충분히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죽유의 화려한 교유 관계, 즉 인물 탐구를 본격적으로 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장소 정체성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경험에서 발현되는 측면도 강하기 때문에 ‘그곳의’ 인물 탐구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차후에 죽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 쓴 만시나, 죽유 사후 다른 이들이 죽유를 추모한 만시들33을 통해 그의 교유 관계를 구체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겠다. 이를 토대로 고향에 대한 죽유의 정체성을 보완하고, 나아가 인접 지역과의 학맥 연구의 바탕을 마련함으로써 고산 지역의 한문학 위치를 재정립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죽유집』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향후 완주 지역 장소 스토리텔링 개발이 본격화되고, 아울러 지역 한문학의 위상도 재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논문접수일: 2025. 10. 30. / 심사개시일: 2025. 11. 17. / 게재확정일: 2025.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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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Placeness of Wanju as Seen in Gu Yeong's Jukyujip(竹牖集)

Kim, Youngmi34

Gu Yeong(具瑩, 1584-1663), also known as Jukyu(竹牖), was born in Baekhyun-ri, Gosan, Wanju County, Jeollabuk-do. He was a prominent poet and writer from Wanju, Jeonbuk-do Province, during the Joseon Dynasty. This study explores the literary achievements of Jukyujip and seeks to reveal the local value of Wanju through his poetry.

Nearly all of his poems express the imagery of "hometown" and "hometown people." His hometown of Wanju and numerous other locations in North Jeolla Province appear simultaneously, vividly portraying the lives of the people who call the region home. Therefore, this paper focuses on "hometown" as the core keyword in Jukyu's Chinese poetry and divides it into "hometown" and "non-hometown" to examine the placeness of hometown and non-hometown

Whether he was in his hometown or temporarily away for official duties, Jukyu constantly recited his hometown. He always described and depicted its landscapes and people in detail. In addition, when he was away from hometown, his poems showed "hometown" as a powerful centripetal force, revealing "a longing that I can't forget even in my dreams." This can be described as a "topophilia" expressing a strong attachment and love for Gosan, Wanju, where he was born and raised, and the surrounding areas.

On the other hand, in Hanyang and non-hometown, Jukyu experienced a "loss of place" accompanied by loneliness and alienation, which he poetically depicted. To express this loss of place, Jukyu neither depicted the specific landscape of Hanyang nor described his memories and recollections there. Although he had already experienced Hanyang, he attempted a kind of "de-placement," de- emphasizing that experience.

Key Words : Gu Yeong(具瑩)Jukyujip(竹牖集)WanjuHometownNon-hometown(他鄕)Placeness

각주

  1. 이 논문은 2025년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의 신진연구자 양성 및 연구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
  2.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mail: ijiu98@hanmail.net ↩︎
  3. 원문은 다음과 같다. ‘昨日土牆當面立, 今朝竹牖向陽開. 此心若道無通塞, 明暗如何有去來’ ↩︎
  4.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실(子實), 호는 후천(后泉)이다. 조선시대 승정원 주서, 예문관 검열, 형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대제학 소세양(蘇世讓)의 증손이다. ↩︎
  5. 그의 강직한 성품에 대해서는 이월영의 「죽유 구영의 생애와 시 세계」(『한국언어문학』109, 2019, 93~95쪽) 참조. ↩︎
  6. 구영, 이월영·김영미·김세라 옮김, 『죽유집』(완주학시리즈7), 완주군, 2019. ↩︎
  7. 이월영, 앞의 논문, 91~120쪽. ↩︎
  8. 이하 번역문 인용은 『죽유집』(2019)의 쪽만 표시한다. ↩︎
  9. 에드워드 s. 케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장소의 운명』, 에코리브르, 2016, 20~21쪽. ↩︎
  10. 이-푸 투안, 구동회·심승희 역, 『공간과 장소』, 대윤, 2005, 19쪽. ↩︎
  11. 에드워드 렐프 지음, 김덕현 외 옮김, 『장소와 장소상실』, 논형, 2005, 108~110쪽. 공간을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장소 정체성은 ‘심상지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심상지리는 공간에 대해 주체가 상상한 것을 포함하여 인식한 것이기 때문에 공간은 실제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인식 작용을 통해 생겨난 일종의 마음속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장소 정체성은 실제적·물리적인 경관과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심상지리와는 다르다. ↩︎
  12. 에드워드 렐프, 위의 책, 116쪽. ↩︎
  13. 에드워드 렐프, 위의 책, 118쪽. ↩︎
  14. 『죽유집』, 55쪽. ↩︎
  15. 『죽유집』, 55쪽. ↩︎
  16. 『죽유집』, 56쪽. ↩︎
  17. 『죽유집』, 57쪽. ↩︎
  18. 『죽유집』, 74쪽 ↩︎
  19. 『죽유집』, 83쪽 ↩︎
  20. 『죽유집』, 73쪽. ↩︎
  21. 『죽유집』, 119쪽. ↩︎
  22. 『죽유집』, 83쪽. ↩︎
  23. 『죽유집』 「오이를 먹으며 食蓏」, 85쪽 ‘천 리 고향 돌아가고 싶은 마음 저물녘에 더욱 많아지네 千里歸心晩更多’ ↩︎
  24. 고향을 고역의 장소로 느끼는 경우는 졸고의 「<최척전>과 <김영철전>에 나타난 장소 정체성 연구」, 『한국언어문학』112, 2020, 108~113쪽 참조. ↩︎
  25. 『죽유집』 권1 「고향에 돌아오다」 57쪽. ‘처자를 이끌고 提携妻與子 /천리 밖 운산을 향하네 千里向雲山’ 죽유는 1629년 46세 때 환향했다가 55세에 와서 별제로 제수되어 복직하기까지 고향에 머물며 강학을 한다. ↩︎
  26. 『죽유집』 권1 「모춘만흥 暮春漫興」, 55쪽. ‘밤새 내린 비 아침이 돼서야 그치니 夜雨朝來歇 /산촌에 햇살 비로소 비치네 山村照日初 /봄 이미 다했음을 몰랐는데 不知春已盡 /향기로운 풀이 뜰가에 가득하네 芳草滿庭除’ ↩︎
  27. 『죽유집』 권1, 「권대업의 시에 차운하여 次權生 大業 韻」, 59쪽. ↩︎
  28. 『죽유집』, 77쪽. ↩︎
  29. 『죽유집』, 81쪽 ↩︎
  30. 『죽유집』 「경진년(1640) 휴가에 고향에 돌아가다 庚辰休暇還鄕」, 62쪽 ↩︎
  31. 『죽유집』, 124쪽. ↩︎
  32. 『죽유집』, 123쪽. ↩︎
  33. 죽유의 사후 죽유를 애도한 많은 만시들이 『죽유집』 부록에 실려 있는데, 애도시를 지은 이들과의 관계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34. Jeonbuk National Univers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