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北學硏究 제16집(2025)  ·  The Journal of Jeonbuk Studies, Vol.16(2025)   |   2025년 12월 31일, 223-253쪽   |   DOI: https://doi.org/10.59592/JBST.2025.16.9

청동기시대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의 지역성 일고찰1

이정은2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박사과정 수료

국문초록

본 연구는 청동기시대 중기 송국리문화의 확산과정에서 만경강 유역의 지역성을 살펴보기 위하여 적색마연토기에 주목한다. 적색마연토기의 형식 및 분포, 출토맥락을 기반으로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의 보편적인 성격을 확인하였으며, 기종별 출토 비율과 변동계수 분석을 통하여 취락군 간 생산 규범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먼저, 만경강 유역 내 취락군이 가장 밀집한 전주천 일대의 세 취락군의 적색마연토기와 무문토기의 변동계수를 비교한 결과, 취락군 별로 다양한 생산 규범이 추정되었다. 이는 각 취락군이 토기 생산에 있어서 상이한 기술적 전통을 가졌거나 토기 제작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서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적색마연토기를 통해 만경강 유역과 인접한 금강 유역의 사회적 경계를 검토하였다. 두 수계는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경천·산북천 유역에 속하는 익산지역을 경계로 핵심 기종 구성과 의례적 사용에서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만경강 유역이 송국리문화를 수용함에 있어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지역문화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주제어 : 적색마연토기만경강 유역변동계수지역성취락군

1. 머리말

만경강은 전라북도 동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부의 광활한 평야 지대를 가로지른 후 서해로 유입된다. 주변으로 다수의 지류가 발달했을 뿐 아니라, 북쪽과 남쪽으로 이웃해있는 금강과 동진강은 넓은 평야 지대로 연결되어 있어, 선사시대부터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인간과 물자, 정보가 교류하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청동기시대 후기에 이르러 점토대토기를 비롯한 새로운 물질문화가 유입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하는 점토대토기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지역으로 많은 연구자의 주목을 받았다(김승옥 2016; 송종열 2016; 김규정 2020, 2024; 한수영 2021; 천선행 2023; 김중엽 2025).

그러나 청동기시대에 본격적으로 취락이 조성되기 시작한 만경강 유역은 기원전 9세기경에 이르러 유적 수와 취락 내 주거지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요한 변화를 맞이한다. 이는 한반도 대부분 지역의 청동기사회가 겪은 급격한 사회 변동이 만경강 유역에서도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송국리유형이 등장한 이 시기는 청동기시대 전-중기의 전환기로 생업경제와 사회·정치뿐 아니라, 종교, 이데올로기 등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 이전 시기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특히 벼농사를 기반으로 한 정주 취락의 증가, 지역 내 대형 취락의 등장 등은 각 단위 지역의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지역성을 보다 강화하고 뚜렷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거시적인 변화 속에서 각 지역이 어떻게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해나갔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과거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청동기시대 중기의 각 단위 지역이 가지는 지역성을 검토하기 위해 본고는 적색마연토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적색마연토기는 당시의 기술체계, 생활 양식, 의례 및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핵심적인 물질문화이다. 특히, 무문토기와 뚜렷이 구분되는 제작기법과 형태는 강한 전통성과 정형성을 지니고 있어 지역별 기종 선택과 변화 양상이 상이하고, 동일한 전통과 기술체계를 공유하는 공간적 범위를 비교적 뚜렷하게 반영한다. 적색마연토기의 이러한 성격은 송국리문화의 확산과 수용에서 특정 지역이 유지하거나 변용한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표 1>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 출토 청동기시대 유적 및 유구 일람

유구유적
주거지
(전기)
주거지
(중기)
무덤수혈고상가옥소성유구
강경천
유역
익산 무형리 고산Ⅱ3311
익산 어량리 중발14215
익산 어량리 상발3
익산 어량리 마산86
익산 삼담리519
익산 삼담리 호천232
익산 와리2
익산 와리 정동85
익산 원수리6
익산 용기리Ⅰ4311
우산천
유역
익산 광암리2
익산 흥암리1
완주 둔산리23
완주 구암리10
탑천유역익산 신용리 갓점12
익산 부평83
익산 부송동 석치고개911
익산 부송동3
익산 영등동717145
익산 신동 227-11
익산 모현동12
익산 모현동2가
(섬다리지구)
27
익산 송학리29
익산 송학동 326-137
익산 송학동2
익산 율촌리 분구묘
전주천
유역
완주 상운리136
완주 운교1
전주 산정동 315-1
전주 오매*5
전주 화정*1
전주 붓내*213
전주 송천동 97-207
전주 송천동 2가14
전주 유교리1
전주 반월동238
전주 동산동
(호남·전북·전라문화유산연구원)
18702812111(3)**
전주 반용리321
전주 팔복동1
전주 여의동1
전주 여의동1*173
전주 만성동C*62
전주 원만성1, 원만성A, 여의동2*22623101
전주 마전(Ⅲ구역)1166
전주 척동2
전주 효자5144
전주 효자4118314(3)**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신주)6
전주 평화동1
전주 중인동5
완주 반교리27
신평천
유역
김제 부거리291
김제 양청리31
김제 대동리Ⅴ21
김제 석교리55
김제 묘라리 고분군10
김제 장산리123
군산군산 축산리계남251
군산 개사동61
군산 관원리Ⅰ21
군산 관원리Ⅱ22

* 해당 유적들은 각각 전주 필천리·오산리유적, 전주 만성동·여의동유적으로 하나의 보고서에 수록되었으나, 여러 지점에 걸쳐 유구가 발견되었다. 본고에서는 유구가 출토되는 구릉을 기준으로 묶은 후 집계하였다.

** 해당 유적들에서 소성유구로 보고된 유구는 없으나 일부 수혈의 경우 소결흔, 불에 그을린 석재, 소토 등이 확인되어 일종의 소성 행위가 추정되고 있다. 야외노지이거나 일시적인 사용 흔적일 가능성이 있지만 본고에서는 소성유구에 포함시켰다.

그림

그림

<그림 1>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 출토 유적 분포도(위: 청동기시대 전기, 아래: 청동기시대 중기): 아래의 가운데가 빈 원은 시기 판별이 불가능한 유구(수혈, 구상유구 등)에서 출토된 유적을 가리킨다.

이에 본 연구는 전북지역, 구체적으로는 만경강 유역에서 출토된 적색마연토기의 형식적, 기술적 속성 및 출토 맥락을 분석하여 적색마연토기의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매개로 한 지역 내 세부적인 양상을 추정한다. 아울러,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금강 유역과 만경강 유역의 사회적 경계를 검토함으로써 청동기시대 중기의 사회 변화과정에서 만경강 유역에서 나타난 지역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만경강 유역 출토 적색마연토기의 형식과 분포

현재 만경강 유역3에서는 130여 곳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조사되었으며, 주거지, 무덤, 수혈 등 약 1,400여 기에 달하는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전북지역 청동기시대 유적 대부분이 이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미사리, 가락동, 역삼동·흔암리유형의 문화요소가 모두 확인되며, 중기에는 송국리유형 문화요소가 확인된다. 유적 및 주거지 수, 방사성탄소연대를 포함한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는 이 시기에 만경강 유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하여 거주했음을 보여주는데, 금강 유역의 미사리-가락동유형 취락의 해체와 송국리문화 유입 과정에서의 인구 재결집 또는 인구중심지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천선행 2019; 황재훈 외 2021).

이 같은 상황에서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의 기본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청동기시대 전-중기의 물질문화 양상과 적색마연토기 분포 및 출토 맥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적색마연토기 출토 유적(표 1, 그림 1)은 대체로 전주와 익산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김제지역 청동기시대 유적은 넓게는 완주 및 익산과 인접한 지역까지 확인되나 적색마연토기가 확인된 유적은 대체로 동진강의 지류인 신평천 인근에 밀집해있는 양상을 보인다. 아울러, 익산 북부는 충청남도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어 수계 상으로 금강의 지류에 속하는 유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 유적의 만경강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만경강 일대와의 비교 검토를 위하여 분석대상에 포함하였다. 유적이 위치하는 만경강의 지류를 기반으로 크게 다섯 개의 세부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Ⅲ장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1)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 형식분류

만경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청동기시대 적색마연토기 기종은 적색마연원저호,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 적색마연완, 적색마연소옹이 대표적이다(표 2). 일반적으로 형식분류의 목적은 시간성을 반영하는 속성을 추출한 후 출토 유구 및 공반 유물의 검토를 통해 형식의 시간성을 파악하는 것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시간성보다는 만경강 유역 내에서 사용된 기종별 형식과 이러한 형식의 세부적인 분포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총 분석대상은 청동기시대 유적 52개소, 146기의 유구에서 출토된 364점이며, 형식분류는 기형 및 속성 판별이 가능한 295점4을 대상으로 하였다. 형식분류는 전북지역 출토 적색마연토기에 대한 기존 연구(송영진·김규정 2014; 송영진 2016; 이정은 2020)를 참고하였으며, 부분적으로 형식명 등을 수정하였다.

<표 2> 적색마연토기의 형식분류

기종 형식
적색마연
원저호
구경부 경부가 동체부에서 급격하게 꺾이며 외반하여 동체와 구경부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형성
경부가 동체부에서 직립 후 구연단에서 외반
구경부와 동체부가 완만하게 연결
동체부 a 동최대경이 동중위에 위치하여 구형 또는 편구형의 동체부를 가짐
b 동최대경이 동하위에 위치하여 주머니형의 동체부를 가짐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
저부 평저
말각평저
동체부 a 장동형
b 플라스크형
구연부 구연단이 내만하며 동체상위에서 최대경 형성
동체부가 완만하게 구연단으로 이어짐
소옹 견부각 74° 이하 a: 경부에서 동체가 축약한 후 외반하는 구연부를 가지는 것
b: 동체가 축약한 후 구연부가 외반 없이 직립하는 것
74° 이상

적색마연원저호는 대개 구경부의 형태에서 뚜렷한 변화가 관찰된다. 원저호가 다수 확인되는 지역에서는 구경부의 길이에 따라서도 세부적인 분류가 가능하지만(이정은 2020; 황재훈·이정은 2022), 원저호의 비중이 적은 만경강 유역은 어렵다. 대신 구경부와 동체부의 접합 방식을 기반으로 동체부에서 급격하게 외반하여 뚜렷한 경계를 형성하는 것(Ⅰ), 동체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경부가 직립 후 구연단에서 외반하는 것(Ⅱ), 동체부와 경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완만하게 연결되는 것(Ⅲ)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최대경 위치는 중위(a)에서 하위(b)로의 경향이 확인된다.

플라스크형의 적색마연호는 송국리문화의 중심지인 금강 유역과 더불어 만경강 유역에서 다수 발견되는 특징적인 기종이다. 저부와 동체부에서 속성을 추출할 수 있는데, 저부는 평저인 Ⅰ식과 말각평저인 Ⅱ식, 동체부는 장동형의 a식과 플라스크형의 b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저부는 Ⅰ식에서 Ⅱ식으로, 동체부는 a식에서 b식으로의 변화가 상정되지만, 이러한 변화는 발생순서일 뿐 각 형식이 출토되는 유구의 시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송영진·김규정 2014).

적색마연완과 적색마연소옹은 송국리문화의 등장과 함께 성행한 기종으로 만경강 유역에서도 다수 확인된다. 적색마연완은 동체부의 형태를 기준으로 형식을 나눌 수 있는데, 구연단이 내만하여 동체 상부에서 최대경을 이루는 것(Ⅰ)과 구연단에서 최대경을 이루는 것(Ⅱ)으로 나뉜다. 만경강 유역의 적색마연완 또한 두 형식이 하나의 유구에 공반되는 경우가 많아 상호 시간차는 인정되지 않는다(송영진·김규정 2014)

적색마연소옹은 먼저 견부각을 기준으로 동체부의 팽만도를 측정하였다. 견부각은 동최대경을 가장 잘 반영하는 속성으로(김범철 외 2007), 견부각이 작을수록 동체부가 팽만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분석대상의 측정결과 약 74도를 기점으로 구분되는 것을 확인하여 74도 이하인 것을 Ⅰ식, 74도 이상인 것을 Ⅱ식으로 구분하였다. Ⅰ식의 소옹은 다시 구연부 및 구경부의 형태로 세분할 수 있는데, 경부에서 동체가 축약한 후 외반하는 구연부를 가지는 것(a)과 축약 후 외반하지 않고 직립하는 구연을 가지는 것(b)으로 나누었다. 적색마연소옹은 대체로 소형이지만 ‘송국리식 외반구연호’와 유사한 기형을 가지며, 변화의 궤를 같이 한다. 소옹은 점차 구연외반도가 커지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송국리 단계에 일상용기화 되면서 기능적 효율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황재훈 2010).

2)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 출토형식

(1) 전기

청동기시대 전기 만경강 유역에서는 미사리, 가락동, 역삼동·흔암리유형의 문화요소가 모두 확인되지만, 물질자료를 보았을 때는 금강 유역의 가락동유형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천선행 2019). 가락동유형의 취락은 대체로 구릉 정상 또는 능선을 따라 입지하며, 일부 충적대지 유적에서는 미사리유형의 문화요소가 확인된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적색마연토기는 무덤과 같은 매장 또는 의례 관련 맥락에서 확인된 예는 없다. 대체로 무시설식 노지가 설치된 대형·세장방형, 중소형·장방형의 주거지에서 발견되며 이중구연+단사선, 이중구연+단사선+구순각목의 발형토기와 직립구연의 호형토기 등 가락동유형의 토기가 함께 확인되지만, 돌대각목문토기와 같은 미사리유형 문화요소도 공반된다(그림 2-위). 이러한 공반 양상에서 나타나듯, 만경강 유역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에서 가락동식 토기의 양상(이중구연단사선의 심발형토기, 직립구연호형토기 등)은 명확하지만, 가락동식 주거지를 결정짓는 특징적 요소가 매우 적게 확인된다. 이와 관련하여,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만경강 유역에서 역삼동유형과 가락동유형이 접촉함에 따른 결과로 보거나(홍밝음 2010), 가락동유형의 문화요소가 만경강 유역으로 유입되는 과정 중 토착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문화요소의 변형이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천선행 2019).

적색마연원저호는 Ⅰb형(그림2-12)과 구연이 결실된 a식 동체부가 확인되었다. 김제 상동동 유적에서는 기내·외면 박리로 인해 무문토기로 보고되었으나 기형상 적색마연토기로 추정되는 개체가 출토되었는데(Ⅰ식: 그림 2-10, 11, Ⅱb형: 그림 2-9), 같은 시기 주변 지역에서 확인되는 원저호의 양상과 동일하다.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는 Ⅰa형(그림 2-13)이 확인되었으며, 적색마연완은 Ⅰ, Ⅱ의 두 형식(그림 2-14, 15) 모두 확인되었다.

출토예가 적어 본고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으나 전기의 특징적인 기종인 대부토기와 직립구연의 장경호가 출토되어 짧게 다루고자 한다. 대부토기는 인접한 충청지역에서도 주로 차령산맥 이북의 역삼동·흔암리 유형 분포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지만 차령 이남의 금강 유역에서도 일부 출토되는데, 가락동유형과 역삼동·흔암리유형의 접촉의 결과로 추정된다(김지현 2010). 대부토기는 대각과 결합하는 기형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지만, 만경강 유역에서는 대각만이 출토되어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그림 2-16).

그림

<그림 2> 청동기시대 전기 적색마연토기 출토 주거지 및 공반유물(위)과 적색마연토기(아래)(1.5.12. 익산 영등동 Ⅱ-7호 주거지, 2. 전주 장동 36호 주거지, 3.15. 전주 동산동 26호 주거지, 4.17. 전주 동산동 59호 주거지, 6.16. 완주 구암리 1호 주거지, 7.8. 익산 영등동 Ⅰ-3호 주거지, 9-11. 김제 상동동 청3호 주거지, 13.14. 전주 동산동 77호 주거지, 18. 익산 영등동 Ⅰ-1호 주거지 19. 완주 구암리 3호 주거지)

그림

<그림 3> 청동기시대 중기 적색마연토기 출토 주거지 및 공반유물(위)과 적색마연토기(아래)(1. 전주 동산동 80호 주거지, 2.3.10.11. 전주 동산동 25호 주거지, 4. 완주 상운리 4호 주거지. 5. 전주 동산동 42호 주거지, 6. 익산 부송동 2호 주거지, 7. 익산 삼담리 상북지 2호 주거지. 8. 완주 반교리 2호 주거지. 9. 전주 동산동 76호 주거지, 12. 전주 마전 Ⅲ-1구역 청동기시대 3호 주거지, 13. 전주 만성동C 6호 주거지, 14. 전주 유교리 3지점 1호 주거지, 15. 익산 원수리 2호 주거지, 16. 익산 어량리 마산 5호 수혈, 17. 전주 효자5 B구역 9호 주거지)

평저장경호는 한반도 여러 지역에 걸쳐 발견되며, 청동기시대 시작 시기에 돌대문토기와 함께 유입된 후 적색마연기법과 결합하여 성립된 기종으로 보고 있다(송영진 2016). 적색마연기법이 적용된 평저장경호는 전주 동산동 유적에서 한 예만이 확인되었다(그림 2-17). 그러나 마연 기법이 구사되지 않은 익산 영등동 유적 출토 평저장경호 또한 마연토기의 범주에 포함되며(송영진 2016), 완주 구암리 유적에서도 동일한 기형이 확인되었다(그림 2-18, 19). 송영진(2016)은 장경⟶중경의 경부, 장동⟶구형의 동체부, 축약굽⟶굽탈락으로의 형식변화를 상정하였으며, 공반유물을 토대로 전주 동산동의 평저장경호를 이른 시기의 것으로, 익산 영등동 출토 평저장경호를 전기 전반 말경의 늦은 시기로 판단하였다.

(2) 중기

만경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중기 주거지는 금강 유역 송국리문화의 영향으로 주거지 중앙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측에 기둥구멍이 설치된 내주공식이 중심을 이루며, 평면형태는 원형과 방형이 모두 확인된다. 평면 원형의 송국리식 주거지와 방형의 휴암리식 주거지의 선후 관계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휴암리식 주거지에서 송국리식 주거지로의 변화를 상정하는 연구도 적지 않으나(김장석 2003; 나건주 2009; 이형원 2010; 황재훈 2010; 김규정 2013), 만경강 유역 내에서도 두 형식 주거지의 비율은 세부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확인되고 있다(천선행 2019). 만경강 유역의 적색마연토기는 절대다수가 송국리식 주거지에서 출토되었으며, 외반구연의 호형토기와 발형토기 및 뚜껑 등과 유구석부, 삼각형석도, 일단경식석촉 등 송국리 문화권에서 다수 보이는 토기 및 석기류와 공반한다.(그림 3-위).

적색마연토기는 전기와 마찬가지로 주거지, 수혈유구와 같은 생활 유구 중심으로 확인되는데, 출토 유적과 출토량이 전반적으로 크게 증가하여 기종과 형식도 다양화된다. 인접한 충청지역에서는 중기에 들어서며 적색마연원저호의 비중이 감소한다. 만경강 유역은 전기 출토 유적의 수가 적어 비교는 어렵지만, 출토 기종 가운데에서는 원저호의 비중이 가장 낮고, 형식 파악 가능한 개체는 모두 Ⅲb형(그림 3-8)으로 확인되었다.

원저호를 제외한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 적색마연완, 적색마연소옹은 모두 중기에 들어 출토량이 증가한다.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는 생활유구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으며, 모든 형식(Ⅰa: 그림 3-9, Ⅰb: 그림 3-12, Ⅱa: 그림 3-10, Ⅱb: 그림 3-11)이 확인되지만 Ⅰa형이 주로 확인된다. 적색마연완은 중기 생활 유구에서 확인된 적색마연토기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며, Ⅰ, Ⅱ(그림 3-13,14)의 두 형식 모두 확인되었다. 송국리문화와 함께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적색마연소옹은 비교적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기종과 마찬가지로 모든 형식(Ⅰa: 그림 3-15, Ⅰb: 그림 3-16, Ⅱ: 그림 3-17)이 확인되지만 Ⅰ식의 동체부를 가지는 개체의 비중이 높다.

청동기시대 만경강 유역의 주요 묘제는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 등 ‘송국리형묘제’로 일컬어지는 것들로 금강 유역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중기에도 무덤에서 적색마연토기가 출토되는 사례는 크게 증가하지 않지만, 토광묘와 옹관묘, 석개토광묘 등 보다 다양한 형식의 무덤에서 출토되며, Ⅰa형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와 Ⅱ형 적색마연완, Ⅰa형 적색마연소옹이 확인되었다. 생활 유구의 출토품과 기형이나 형식상에서 구분되지는 않으며, 타 지역의 무덤 내에서 빈번하게 확인되는 적색마연호류 대신 완이나 소옹이 비교적 다수 출토된다.

3.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의 기능과 지역성

만경강 유역의 적색마연토기 출토 유적은 만경강을 중심으로 남북부 모두에 걸쳐 있으며, 유적이 위치하는 만경강의 지류를 기준으로 크게 다섯 개의 세부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전주시의 모든 유적과 완주군의 유적을 포함하는 전주천 유역, 완주군과 익산시의 일부 유적을 포함하는 우산천 유역, 익산시의 유적 대부분이 위치하는 탑천 유역, 김제시에 속하는 유적이 위치하는 신평천 유역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익산시에 속하지만, 충청남도와의 경계 가까이에 위치하는 강경천·산북천 유역의 유적이 있다.

이번 장에서는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가 가지는 전반적인 특징과 위와 같은 세부적인 분포에 따라 보다 세부적인 특징이 확인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표 3> 만경강 유역 청동기시대 중기 적색마연토기 출토 유구(단위: 점)

유구주거지수혈무덤소성
유구
의례
유구
기타
출토
수량
290
81.9%
43
12.1%
5
1.4%
4
1.1%
4
1.1%
10
2.3%
세부
위치
바닥면·
퇴적토
기둥
구멍
타원형
구덩이
내부 부속 시설바닥면·
퇴적토
내부 부속 시설무덤 내부시상대
출토
수량
269
92.8%
7
2.4%
9
3.1%
5
1.7%
42
97.7%
1
2.3%
3
60%
2
40%

* 속성 판별이 어렵더라도 기형 판별이 가능한 경우 집계에 포함하였다.

1) 적색마연토기의 출토 맥락과 기능

<표 4> 만경강 유역 무덤 내 토기 사용 유적 일람

유역유적유구비고
석관석개토광토광
강경천익산 웅포리2
익산 어량리247
익산 화산리 신덕2
익산 무형리 포변152
익산 호암리1
탑천익산 모현동 2가21적색마연토기
익산 새동리·고봉11
익산 율촌리 분구묘11적색마연토기
익산 서두리21
전주천완주 반교리2
전주 필천리12
전주 전미동 2가1
전주 반월동2적색마연토기
전주 만성동·여의동1
전주 효자41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1
신평천김제 대동리Ⅰ1

*유역별 송국리형 묘제 바닥시설 비율
- 강경천: 생토(16, 29.5%), 석재(4, 7.5%), 토기편(34, 63.0%)
- 탑천: 생토(10, 50.0%), 석재(1, 5%), 토기편(9, 45%)
- 전주천: 생토(39, 54.2%), 석재(22, 30.5%), 토기편(11, 15.3%)
- 신평천: 생토(1, 25%), 석재(2, 50%), 토기편(1, 25%)

이번 절에서는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의 출토 맥락과 기능을 살펴본다.

적색마연토기는 무문토기와 구분되는 기형이나 적색이 가지는 의미를 고려하여 주로 부장용이나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인식되며 적색마연토기가 다수 출토되는 영남 지역에서는 부장품으로써의 양상이 두드러진다. 만경강 유역 적색마연토기 출토 현황(표 3)을 보면, 무덤에서 적색마연토기가 출토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 뿐 아니라, 무덤 형식이나 출토 기종, 출토 위치 등이 다양하여 일정한 부장관습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만경강 유역에서는 파쇄한 적색마연토기를 묘광 바닥에 깔아 시상대로 사용한 예가 비교적 높은 비중으로 확인되었으며, 익산 모현동2가 섬다리지구 1호 석개토광묘(그림 4-1, Ⅰa형 소옹)와 전주 반월동 3호 토광묘(그림 4-2, Ⅰa형 플라스크형호) 출토 적색마연토기는 기형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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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무덤 내 적색마연토기의 시상대 사용 예(1. 익산 모현동2가 섬다리 지구 1호 석개토광묘, 2. 전주 반월동 3호 토광묘)

호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송국리형 분묘의 경우 석관묘와 (석개)토광묘는 생토 바닥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며, 바닥 재료로 토기를 사용하는 예는 가장 국지적인 분포를 보여 공주, 논산, 서천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금강 하류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되었다(박주영 2015). 이와 함께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석관묘 내 동검의 부장, 적색마연토기의 부재, 바닥부 요갱 시설 등은 이 지역의 특수성으로 여겨진다(오대양 2021).

분석지역 내 송국리형 분묘에 토기를 바닥 재료로 쓴 예를 살펴보면, 우산천 유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권에서 출토되고 있어 비교적 넓은 분포를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금강 유역의 지류인 강경천 유역에서 특히 많이 보인다(표 4). 이는 강경천 유역이 금강 하류역의 송국리문화 핵심지역에 포함되거나 가까운 영향권 하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전주천 유역으로 갈수록 토기편을 사용하는 비율이 낮아진다. 이종철(2015)은 송국리문화 중심지인 금강 유역에서 멀어질수록 원형의 송국리식 주거지의 비율이 낮아지고 평면 방형 주거지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이는 송국리문화가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어 재지 집단에 의해 수용되는 과정에서 변용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서부 평야지대권(본고의 만경강 유역)은 금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의 점이지대적 성격을 가진다. 본고에서 금강 하류와 영산강 유역 송국리형 묘제의 바닥시설 비율을 검토하지 못하였으나, 탑천과 전주천의 양상은 금강 하류의 매장관습이 주변 지역으로 전파하는 과정에서 재지 집단에 의해 변용되는 과정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바닥시설에 적색마연토기를 사용한 예가 금강 유역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반면, 전주천 및 탑천 유역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장유물과 부장위치, 형태 등을 아우르는 부장관습은 분묘를 축조하는 집단의 성격이나 의례 행위와 관련된 의도를 반영하며(이재언 2016), 나아가 당시 사회의 주민 구성이나 집단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오대양 2021). 무덤과 관련된 맥락에서 발견되는 토기편에 대해서는 장송 의례와 이후의 의도적인 훼기가 많이 논의되었다(이상길 1994: 윤호필 2017; 강민석 2023). 시상대로 석재 대신 토기를 선택하는 것은 토기편이 가지는 물리적 특성, 재료의 수급 등 다양한 기능적, 환경적 요인도 있었을 테지만, 선행연구의 훼기 관련 의례들을 고려하면, 토기를 파쇄하여 바닥에 까는 행위에 단순히 바닥시설을 마련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적색마연토기를 사용한 무덤과 무문토기를 사용한 무덤 간에 입지나 부장유물의 차이가 확인되지 않아, 이 같은 부장관습의 구체적인 의미나 이를 만경강수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적 특징의 하나로 보기 위해서는 보다 자료의 축적이 필요할 것 같다.

만경강 유역의 적색마연토기 대다수는 주거지, 수혈유구와 같은 생활 유구에서 출토되었다. 적색마연토기의 실용기로서의 사용 여부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이러한 출토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먼저, 적색마연기법이 기벽의 흡수율을 줄인다는 특성상 액체류의 저장 용기로 추정한 견해가 다수 제기되었다(동진숙 2006; 김규정 2013). 군산 가도 패총 보고자는 출토된 적색마연토기에 불을 받은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취사용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한시적 야영지 및 독립 노지에서 다수 출토된다는 점에서 물과 같은 필수품을 담는 용기였을 것으로 제시한 바 있다(박순발 외 2001). 마연토기의 정선된 태토 특성상 자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적색마연토기에서 유기물 탄착흔, 피열흔과 같은 조리흔이 확인되는 예도 적지 않게 보고되고 있다(안재호 1996; 고민정·Bale 2008; 이종철 2015). 만경강 유역의 출토 맥락을 고려하면 의례용으로 쓰는 동시에 일상용기로 전용되었거나, 보편적인 일상용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김규정 2013; 이종철 2015; 송영진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색마연토기 고유의 특수한 의미가 이러한 출토 맥락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생활 유구와 관련된 의례에서 적색마연토기의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명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주거지 축조 또는 폐기와 관련된 의례(김규정 2017)를 비롯한 취락 내 다양한 종류의 의례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의 의례 연구는 고고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환호나 환구, 대형 굴립주 건물,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수혈 또는 구상유구, 암각화, 매납 유구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김권구 2012; 김경택·황지미 2014; 송만영 2020; 이형원 2021; 이종철 2023; 유병록 2024). 만경강 유역에서 이러한 흔적이 확인된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먼저,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인 완주 구암리유적에서는 방형 환구와 함께 내부에서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구암리유적에서 적색마연토기가 출토되었음에도 의례 유구 내부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만경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전기에 적색마연토기가 활발하게 이용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해당 의례의 성격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환구 관련 의례는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에 집중되어 확인되는 경향이 있으며(이종철 2023), 구암리 환구 내부의 수혈유구에서는 불에 그을린 할석이 소토층과 반복적으로 퇴적된 양상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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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전주 동산동유적 청동기시대 중기 유구배치도(왼쪽)와 의례유구 및 출토유물(오른쪽, 김규정 2017: 그림 14)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취락의 공간적 분화가 더욱 명확해지는 가운데, 전주 동산동유적에서는 구암리와는 유사하지만 다른 양상의 의례 공간이 확인되었다. 동산동유적의 중앙부에는 주거지 군과 일정한 공지를 두고 의례유구와 이와 비슷한 양상의 연접한 5기의 수혈유구가 위치하는데 취락 내 구성원이 모여 의례를 실시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을 의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례유구(그림 5)는 평면 부정형과 타원형의 얕은 수혈을 굴광한 형태이며 무문토기와 적색마연토기, 석기 및 다량의 석재와 목탄이 확인되었는데, 완형의 적색마연토기와 석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의식적인 행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측케 한다(김규정 2017).

다음으로 저장 관련 의례를 살펴보겠다. 주거지 내에 저장용 수혈을 설치했던 청동기시대 전기와 달리, 주거지 외부에 저장공이 설치되는 송국리 문화 단계에는 저장공이 정연성을 가지고 군집을 이루거나, 주거지보다 더 많은 수가 확인되는 유적이 다수 등장한다. 금강 유역의 송국리문화 단계 군집 저장공을 연구한 손준호(2004)는 저장공의 인위적인 매립 흔적을 근거로 의례적 행위의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배진성(2016)은 금강 유역에서 저장수혈에서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가 출토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에서 저장 관련 의례의 가능성과, 이러한 토기가 의례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만경강 유역에서도 확인되었다. 의도적인 폐기가 추정되는 일부 수혈5에서는 소성토와 목탄이 다량 포함된 토층에서 파쇄된 무문토기와 적색마연토기가 다량 출토되어 인위적인 매립이 추정된다. 단순 폐기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이들 유구에서 적색마연토기가 빈번히 출토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인위적인 폐기가 의례적 의미를 가지고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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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청동기시대 중기 적색마연토기 주거지 내 의례 관련 출토 사례(1. 전주 동산동유적 31호 주거지, 2. 전주 효자5유적 B구역 5호 주거지)

주거지 차원에서는 폐기 의례의 흔적을 관련 의례로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양혜진(2009, 2011)은 송국리문화 취락의 폐기 양상에 대해 검토하며, 특정 위치(기둥 구멍, 출입구, 노지 등)에서 완형의 토기가 출토되거나 생활면 혹은 목탄층 위에 유물이 다량 집적되는 경우를 폐기 의례의 흔적으로 예측하였다. 만경강 유역에서도 기둥구멍이나 중앙의 타원형 구덩이 내에 적색마연토기가 매몰되어 확인된 사례들이 확인된다. 전주 동산동유적의 경우 31호(그림 6-1), 33호, 36호, 67호, 80호 주거지 등의 타원형 구덩이 또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 기둥구멍에서 적색마연토기가 확인되었다. 전주 효자5유적 B지구 3호 주거지에서는 중앙의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대칭 배치된 4개의 기둥구멍 중 2개에서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가 1점씩 출토되기도 하였다(그림 6-2). 이러한 특정 지점에 매납하는 사례 외에 다량의 토기가 일정한 구역에서 집중적으로 파쇄하여 매립한 양상도 확인된다. 전주 동산동 31호 주거지가 이러한 사례에 해당하며, 적색마연토기도 이같이 다량으로 파쇄된 토기편 사이에서 함께 확인되었다(그림 6-1). 나아가 동산동유적에서는 적색마연완과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가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아 의례와 같은 특수한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추정된다(김규정 외 2015; 김규정 2017).

2) 생산과 사용의 지역별 비교 분석

만경강 유역 전역에서 출토되는 적색마연토기는 송국리문화의 중심지인 금강 하류역과 기종 구성 등에서 광범위한 특징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금강과 만경강을 아우르는 비교적 넓은 지역 내에 적색마연토기의 사용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천선행 2019)는 만경강 유역 내에서도 세부지역(취락군)에 따라 주거지의 형식이나 묘제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지역적 차이가 다른 물질문화, 즉 토기에도 반영되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면서,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토기의 수용 또한 세부지역별로 상이한 양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표 5> 만경강 유역 세부지역별 전-중기 적색마연토기 개체수 및 비율 비교(단위: 개체수(비율))

지역권기종전기중기
전주천유역
(전주 및 완주 일부)
적색마연원저호1(10)10(4.0)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2(20)66(26.1)
적색마연완5(50)139(54.9)
적색마연소옹-38(15.0)
유적수224
우산천유역
(완주 및 익산 일부)
적색마연원저호-2(50.0)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1(25.0)
적색마연완-1(25.0)
적색마연소옹--
유적수13
탑천유역
(익산)
적색마연원저호3(75)1(1.7)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11(19.3)
적색마연완-36(63.2)
적색마연소옹-9(15.8)
유적수19
신평천유역(김제)적색마연원저호4(100)-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3(50.0)
적색마연완-1(16.7)
적색마연소옹-2(33.3)
유적수16
강경천·산북천
유역
(익산)
적색마연원저호--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12(35.2)
적색마연완-7(20.6)
적색마연소옹15(44.1)
유적수(1)*8

* 기형 파악 가능 개체 없음
** 속성 판별이 어렵더라도 기형 판별이 가능한 경우 집계하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형별 출토 비율을 검토하며, 이를 통해 적색마연토기의 생산 및 사용과 관련한 유역 내, 유역 간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유역 내 비교: 전주천 유역 취락군을 중심으로

먼저, 만경강 유역으로 묶은 지역을 보다 세부적으로 검토하여, 선행연구에서 설정한 ‘취락군’ 단위에서 적색마연토기의 생산과 사용에 차이가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천선행(2019)은 만경강 유역 내 중기 취락이 대형 취락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집합체’를 이루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집합체는 인접하는 집합체와의 공간적 관계 속에서 취락군을 형성하였다. 이같이 형성된 취락군 내의 유적들은 생업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을 것이고, 취락군 간의 차이는 두드러졌을 것이다. 따라서 본 절은 이러한 취락군 구분이 적색마연토기의 사용과 생산에도 반영되어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전주천 유역은 만경강 유역에서 청동기시대 중기 유적이 가장 밀집하여 적색마연토기가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지역이다. 전주천 유역의 청동기시대 유적6은 네 개의 취락군으로 나뉘는데(송천지구, 동산·만성지구, 효자지구, 중인지구), 중인지구의 경우 유적의 수와 적색마연토기 출토량 모두 많지 않아 본절에서는 상호 인접한 송천지구, 동산·만성지구, 효자지구7를 중심으로 적색마연토기의 사용 및 생산 양상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전주천 유역의 적색마연토기는 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그 뒤를 이어 플라스크형호, 소옹, 원저호 순으로 확인된다(표 5). 이를 지구별로 세분해서 살펴보면(표 6), 전반적인 기종별 비중 순서는 세 지구가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효자지구는 다른 두 지구에 비해 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소옹의 비중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 또한,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의 형식 분포에서 차이가 있다. 이 기종은 동산·만성지구에서 대다수가 출토되었으며, 모든 형식이 확인되는 반면, 다른 두 지구에서는 Ⅰa형을 중심으로 출토된다. 이러한 양상은 출토 기종 또는 형식의 지역적 편중을 보여주며, 취락군 별로 필요로 하는 기종이 달랐을 수도 있음을 제시한다.

<표 6> 전주천 유역 취락군별 적색마연토기 출토 비율(단위: 개체수(비율))

기종
지구
원저호플라스크소옹합계
동산·만성지구3(1.8)39(23.8)17(10.4)105(64.0)164(100.0)
송천지구1(6.7)4(26.7)2(13.3)8(53.3)15(100.0)
효자지구1(1.9)15(28.3)15(28.3)22(41.5)53(100.0)

* 속성 판별이 어렵더라도 기형 판별이 가능한 경우 집계에 포함하였다.

그렇다면 생산과 관련해서는 어떤 차이가 확인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각 지구에서 출토되는 토기의 유사도를 변동계수를 통해 비교하고자 하였다. 변동계수(coefficient of variation, CV)는 표준편차를 산술평균으로 나눈 값으로 집단 내 데이터의 상대적인 변이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이다. 변동계수 값이 작을수록 데이터의 유사도가 높고, 반대로 값이 클수록 변이의 폭, 즉 다양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러 연구에서 토기 생산체계에서 전문화의 여부를 파악하는데 활용되어왔다(정수옥 2018; 김은채 2021; 황재훈·이정은 2022). 변동계수 비교는 완형 개체의 출토량이 많은 적색마연완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적색마연토기와 무문토기 생산의 차이를 검토하기 위해 무문의 외반구연호와 심발(중소형)8을 함께 분석하였다. 분석 변수는 개체의 크기를 반영하는 1차 연속형 속성(기고, 구경, 저경. 동최대경) 과 각 변수간의 비율로 전체적인 형태를 반영하는 2차 연속형 속성(기고비(구경/기고), 구경비(저경/구경), 동체세장비(동최대경/기고))을 이용하였다(표 7, 8).

먼저, 각 지구 내에서 적색마연토기와 무문토기 생산에 차이가 존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사한 기형의 적색마연완과 무문 심발의 규격성을 비교한 결과, 뚜렷한 차이가 확인되었다. 동산지구는 적색마연완의 변동계수 값이 크기(기고, 구경, 저경)와 형태(기고비), 모든 면에서 현저히 낮아 적색마연토기 생산이 뚜렷하게 규격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송천지구는 적색마연완의 구경과 저경의 변동계수 값이 매우 낮아 높은 규격성을 보이지만, 기고나 구경비 등 일부 값은 무문 심발과 유사하거나 더 높게 나타난다. 반면, 효자지구는 기고나 저경 등 일부 항목에서 오히려 무문 심발의 변동계수 값이 더 낮게 관찰되어, 적색마연완이 일관되게 엄격한 규범을 가지고 제작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음으로, 세 지구의 생산 양상을 비교한 결과, 명확히 구별되는 양상이 확인되었다. 동산지구는 앞서 살펴본 적색마연완 뿐 아니라, 무문토기의 형태 측면에서도 낮은 변동계수 값이 나타나 전반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표준화 경향이 관찰되었다. 효자지구는 적색마연완의 규격성은 크게 높지 않지만, 무문토기 두 기종의 크기 관련 변수에서는 오히려 동산지구보다 낮은 값이 관찰되어 절대적인 크기에 대한 균일성이 중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송천 지구의 경우, 적색마연완의 구경과 저경, 무문 심발의 기고비와 같이 특정 부분에서 매우 낮은 변동계수 값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의 값에서는 세 지역 가운데 변이의 폭이 가장 크게 확인되었다.

이상의 분석은 각 취락군이 토기 생산에 있어서 상이한 기술적 전통, 또는 토기 제작에 대한 사회적 합의(규범)를 가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적색마연토기의 제작이 무문토기보다 더 규격화되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효자지구처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무문토기의 규격성이 더 높은 경우도 확인되었다. 또한, 송천지구처럼 크기나 형태 중 한 측면에서만 높은 규격성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표 7> 적색마연완·무문 심발 변동계수

적색마연완무문 심발
지구기고구경저경기고비지구기고구경저경기고비
동산·만성
(n=87)
11.5610.4911.079.55동산·만성
(n=15)
18.6214.7017.7820.27
송천
(n=7)
30.877.245.8121.40송천
(n=7)
28.1221.7127.2916.74
효자
(n=14)
18.8610.6416.7516.90효자
(n=9)
15.2719.1715.9421.10

<표 8> 무문 외반구연호 변동계수

지구기고구경저경동최대경세장비구경비
동산·만성
(n=61)
29.6223.2320.4726.829.0717.97
송천
(n=17)
40.5629.9524.2433.7114.9523.50
효자
(n=10)
26.6321.8018.7725.2410.2119.14

다만, 동산·만성지구의 높은 규격성을 해석하는데 있어 분석 표본의 다수가 동산동유적에서 출토되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동산지구의 낮은 변동계수 값은 동산지구 전체의 생산 양상이 아닌, 동산동유적만의 높은 생산 전문성 또는 규격성을 반영한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필자는 남강 유역 적색마연토기의 생산 및 유통체계를 검토한 연구에서 진주 대평리유적의 규모, 체계화된 생산시설, 적색마연토기 출토량, 그리고 남강 유역 전역에서 확인되는 특정 기종의 유사성을 근거로 대평리유적이 생산·유통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황재훈·이정은 2022). 동산동유적은 복수의 단위 취락으로 이루어진 주거영역, 저장 및 보관영역, 매장영역의 취락 설계를 보여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광장 및 의례유구가 확인된다. 또한, 주거지 크기에 따른 취락 내 위계화가 관찰될 뿐 아니라, 취락 주변의 중, 소규모 취락과 지역연계망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연계망이 인근의 동산·만성지구의 유적과 송천지구, 효자지구까지 아우를 것으로 보기도 한다(이종철 2020). 대평리유적과 같은 체계적인 생산시설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동산동유적의 이러한 구조와 다수의 적색마연토기, 낮은 변동계수 값 등을 토대로 대평리유적과 유사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본 절에서는 제한적인 기종만을 대상으로 분석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동산동유적의 생산 규범이 같은 취락군 내 유적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유역 간 비교: 만경강 유역과 금강 유역

다음으로는 적색마연토기에서 확인되는 만경강 유역과 금강 유역의 사회적 경계를 살펴보겠다.

먼저, 전주천 유역 외의 지역을 추가로 살펴본 결과(표 5 참고), 만경강 수계 내에서는 전반적으로 유사한 양상이 확인되었다. 탑천 유역은 완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출토 유적과 수량이 적어 형식의 다양성은 낮지만,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는 적색마연완과 함께 출토된 사례가 확인되었다. 우산천 및 신평천 유역 또한 명확한 지역적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공통적으로 플라스크형호와 완이 확인되어 만경강 유역의 전반적인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금강 수계인 강경천·산북천 유역은 상이한 양상을 보였다. 만경강 수계와 달리 소옹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Ⅰa·Ⅰb형만이 확인되었으며, 완의 비중은 가장 낮게 나타났다. 출토 맥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덤에서 사용되거나 주거지 내 타원형 구덩이 또는 기둥구멍에서 발견된 예가 없다.

이러한 양상에서 봤을 때 전북지역에 속하며, 평야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익산지역을 경계로 금강 유역과 만경강 유역 사이의 적색마연토기 전통이 차이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송국리 단계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기종인 적색마연완과 적색마연소옹의 상이한 비율이 이를 잘 보여준다.

송국리유형이 금강 하류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적색마연소옹은 송국리유형의 중심지(부여, 논산, 공주 등)에서 특히 성행하며 지속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만경강 유역에서는 소옹의 비중이 매우 낮은 대신 완이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며, 검토 지역에서는 전주천 및 탑천 유역과 강경천·산북천 유역의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종 선택의 문제는 적색마연원저호와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의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이용된 원저호는 전기 취락이 활발했던 금강 상류나 서해안 등지에서는 중기까지 지속된다. 반면, 전기 취락 점유가 희소했던 만경강 유역과 금강 하류역은 원저호의 비중이 매우 낮은 대신 플라스크형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기종이 상반되는 비중으로 발견되는 양상은 이들 기종이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대체제였으며, 이에 대한 선택이 지역별로 상이하게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금강 유역의 소옹은 동체부가 축약하지 않고 구연부가 넓어지는 방향으로 기형이 변화하는데(황재훈 2010; 이정은 2020), 이는 완을 대신하는 배식기로 사용되기에 유리한 형태였을 것이다. 즉, 만경강 유역은 전기 취락의 전통이 약하고 플라스크형호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금강 하류역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소옹 대신 완을 주력 기종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독자적인 지역성을 보인다.

두 번째 지역성은 적색마연토기의 의례적 성격, 특히 부장관습에서 확인된다. 적색마연토기가 무덤에서 확인되는 예는 전-중기를 통틀어 금강 유역 전체적으로 희소한 편인데, 그 분포는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의 조영이 활발했던 금강 상류 및 미호강 유역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그림 7). 반면, 금강 하류역은 중기 취락이 급증하고 적색마연토기가 다수 제작되었음에도 무덤에 사용되는 예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기 취락이 거의 공백에 가까웠던 금강 하류역은 송국리문화와 함께 새롭게 점유가 시작되면서 적색마연토기의 사용에 대해 전기 가락동문화의 전통과 다른 새로운 관념을 정립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즉, 금강 유역에서 적색마연토기의 부장은 송국리문화의 보편적 관습으로 자리잡지는 못하였으나, 전기 취락의 조성이 활발했던 지역은 송국리문화의 확산에도 이전 시기의 전통이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이정은 2020).

그렇다면 만경강 유역을 살펴보자.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취락의 분포가 뚜렷하지 않으며 적색마연토기의 부장 사례도 확인되지 않아 금강 하류역과 유사한 배경을 가진다. 하지만 청동기시대 중기에 들어서면, 절대적인 수량은 많지 않아도 단위 지역 대비 무덤에서 확인되는 사례가 비교적 많다. 특히, 금강 하류역에서 만경강 유역으로 갈수록 토기를 시상대로 사용하는 사례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적색마연토기를 시상대로 사용하는 무덤이 여럿 확인된다. 이는 금강 하류 송국리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의례적 사용에 있어서는 명백히 다른 선택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

<그림 7> 만경강 유역 무덤 내 적색마연토기 출토 유적(왼쪽 위는 만경강유역과 인접한 지역 내 적색마연토기 무덤 출토 유적 분포도로 사각형은 전기 무덤, 원형은 중기 무덤을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이는 송국리문화가 만경강 유역으로 유입되는 과정이 단순한 수용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만경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중기 사회는 소옹 대신 완을 중심으로 하는 기종 구성을 선택했을 뿐 아니라, 이를 금강 하류와 다른 의례적 방식으로 사용하는 등, 유입된 문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독자적인 지역성을 확립하였음을 보여준다.

4. 맺음말

본고는 청동기시대 중기 만경강 유역의 지역성과 취락 간 관계에 주목하여 적색마연토기의 형식적, 기술적 속성 및 출토 맥락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전주천 유역의 주요 취락군(동산·만성, 효자, 송천)은 토기 제작에 있어 구별되는 상이한 사회적 규범을 공유하였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만경강 유역은 기종 구성과 부장관습 등에서 인접한 금강 하류역과 뚜렷한 문화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는 송국리문화의 확산과정에서 만경강 유역이 수동적으로 문화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확립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판단된다.

그러나 만경강 유역 내 취락 간 관계를 보다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몇 가지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분석 가능한 개체 수의 문제로 모든 적색마연토기 기종을 분석대상으로 하지 못하였으며, 표본이 특정 유적에 과도하게 편중된 예(동산·만성지구-동산동유적)가 있어 분석 결과가 각 취락군의 양상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본고에서 제시한 생산 양상의 차이는 일부 기종의 변동계수 값의 비교에 의존하고 있다. 변동계수는 생산 양상의 일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추가적인 분석 도구 없이 세부적인 생산 및 교환 시스템을 규명하는데는 한계를 가진다. 그 결과, 적색마연토기만의 고유한 생산체계나 각 취락군 내의 소비, 교환 양상을 상세히 규명하지 못하였다. 본고에서는 만경강 유역 내 보다 국지적인 생산체계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살펴본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하며, 향후 분석유적과 기종을 확대하고, 태토 분석 등 고고과학적 분석을 병행한다면 만경강 유역 청동기시대 중기 사회의 지역성과 취락군 간의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논문접수일: 2025. 10. 31. / 심사개시일: 2025. 11. 17. / 게재확정일: 2025.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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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Regionality of Bronze Age Red-burnished Pottery in the Mangyeong River Basin

Lee, Jeongeun9

This study focuses on Red-burnished Pottery to examine how the Mangyeong River Basin formed its regionality during the diffusion of the Songguk-ri Culture in the Middle Bronze Age. To this end, this paper first identified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Red-burnished Pottery in the Mangyeong River Basin based on an analysis of its typology, distribution, and archaeological contexts. Subsequently, the Coefficient of Variation (CV) was analyzed to compare differences in production norms among settlement clusters.

First, a comparison of the CV values for Red-burnished Pottery and Plain Coarse Pottery from the three settlement clusters along the Jeonjucheon Stream revealed distinct production norms for each cluster. This suggests the possibility that each settlement cluster possessed different technical traditions or had different social agreements regarding pottery production.

Next, a review of the social boundaries between the Mangyeong River Basin and the adjacent Geum River Basin was conducted using Red-burnished Pottery. The results confirmed clear differences between the two river systems, despite their geographical proximity, particularly in their core typological compositions and ritual practices. This demonstrates that the Mangyeong River Basin actively selected and reinterpreted the Songguk-ri Culture rather than passively accepting it, thereby forming a distinct regional culture.

Key Words : Red-burnished PotteryMangyeong RiverRegionalityCoefficient of VariationSettlement Group

각주

  1. 이 논문은 2025년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의 연구지원사업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
  2.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박사과정 수료, E-mail: frontdoorlee@naver.com ↩︎
  3. 본 연구에서 다루는 만경강 유역은 전라북도 북부지역을 넓게 아우르며,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주군, 익산시, 김제시, 군산시가 포함된다. 그러나 군산지역의 경우 청동기시대 유적이 다수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패총을 포함한 소수의 유적에서만 적색마연토기가 출토되고 수량 또한 많지 않아 분석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
  4. 적색마연원저호 10점,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 67점, 적색마연완 184점, 적색마연소옹 34점 ↩︎
  5. 군산 관원리 Ⅱ-가 1호 수혈, 익산 삼담리 8호, 11호 수혈, 익산 와리 8호 수혈, 전주 동산동 14호 수혈(전북), 전주 동산동 마지구 4호 수혈(호남), 전주 여의동 2-2지점 2호, 3호, 5호 수혈 등 ↩︎
  6. 해당 연구에서는 전주천 이동 및 이서에 위치한 완주 지역 유적도 각각 용진지구(완주 상운리, 완주 운교), 이서지구(완주 신풍, 완주 반교리, 완주 옥정)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같이 세부적으로 분류, 검토하기에는 각 지구에서 적색마연토기가 출토된 유적이 많지 않아 모두 전주천 유역 유적에 포함하였다. ↩︎
  7. 각 취락군에 포함되는 유적은 그림 1의 청동기시대 중기 적색마연토기 출토 유적 분포도에서 28-33(송천지구), 34-39(동산·만성지구), 40-44(효자지구)이다. ↩︎
  8. 심발형토기는 20.9cm를 기준으로 중소형과 대형으로 나누었다. 대형의 경우 표본 수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중소형 심발의 변동계수 값과 유사한 패턴을 보여 본문에는 중소형 심발의 변동계수 값만 제시하였다. ↩︎
  9.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