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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Space Collection: 『전북학연구』는 복합학을 지향하는 학술지입니다. 전북과 관련 있는 다양한 주제가 연구되고 논의되어 전북학 연구의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참여바랍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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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전북학연구』는 복합학을 지향하는 학술지입니다. 전북과 관련 있는 다양한 주제가 연구되고 논의되어 전북학 연구의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참여바랍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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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26-03-07T05:34:5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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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북의병 관련 자료의 현황과 과제 : 임진·병자 의병을 중심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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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전북의병 관련 자료의 현황과 과제 : 임진·병자 의병을 중심으로
연구책임자: 문경득
Abstract: 본 연구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외세에 맞서 싸운 전북 지역의 의병활동에 대한 논문, 단행본, 문집, 사료 등을 정리한 목록을 양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했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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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병은 전북 출신이거나 전북에서 거주하던 인물로 의병활동에 나선 인물로 한정하여 463명의 명단을 정리하였다. 다만 전북의병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전라도 전반의 의병활동에 대한 연구성과도 함께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기존 연구사업에서 정리한 관련 문헌 중에서 전북의병과 관련없는 자료를 제외하고, 전북의병 인명을 색인어로 삼아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검색하였다. 그 결과, 첫째, 2010년대까지 점진적으로 연구성과가 증가했으나 2020년대에는 연구자가 줄어들어 연구성과 또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전쟁으로부터 160년 이상 지난 뒤에 기록된 사료가 전체의 74%로, 후대에 의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사료는 의병활동의 중요성과 별개로 특정 인물에 편중되어 있었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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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연구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적극적인 연구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연구에 앞서 사료비판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탈민족, 탈지역의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기념사업의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전담기관과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둘째, 전북의병의 범주를 확대하고 인접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하여 연구와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description>
    <dc:date>2025-08-31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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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rdf:about="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522">
    <title>보덕성(報德城) 반란을 바라보던 ‘시선’들 : 관련 기사에서 사용된 표현에 주목하여</title>
    <link>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522</link>
    <description>Title: 보덕성(報德城) 반란을 바라보던 ‘시선’들 : 관련 기사에서 사용된 표현에 주목하여
연구책임자: 윤태양
Abstract: 684년 11월 보덕성(報德城)에서 발발한 반란에 대한 정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내에서 신라본기(新羅本紀) 신문왕(神文王) 4년(684) 11월조와 김영윤열전(金令胤列傳)·핍실열전(逼實列傳)이라는 세 가지 자료에 의해 전해져 왔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 記)』 직관지(職官志) 무관(武官) 9서당(九誓幢)조에 보이는, 686년 '보덕성 백성'으로 구성, 창설된 부대 적금서당(赤衿誓幢)·벽금서당(碧衿誓幢) 또한 보덕성에서의 반란이라는 사건에 대한 사후 수습책으로서 함께 살펴져 왔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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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 가장 먼저 신문왕본기 4년(684) 11월조의 세주(細註)에서 대문(大文)과 실복(悉伏)이라는 인물이 혼동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동시에, 이 기사에는 금마저(金馬渚)·금마군(金馬郡)이라는 두 종류의 지명이 함께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이 기사는 본래 나뉘어 있던 두 자료가 하나로 합쳐져 현재의 형태로 성립하였다고 보았다. 그 가운데 한 자료는 대문이 주살당한 것을 본 '남은 사람들[餘人]'이 반란을 일으켜 이들이 제압당하는 과정에 주목한 것으로 비교적 당대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보았다. 반면 다른 한 자료는 반란의 경과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다루었고 이후 지방 사회의 재편에 주목하였으며 684년 10월의 유성우(流星雨) 기사를 언급하며 도참적 성격을 내비쳤던 자료였던 것으로 추측하였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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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보덕성에서의 반란을 전하는 또 다른 자료들인 김영윤열전·핍실열전에서 공통적으로 '고구려 잔적(殘賊)'이라는 표현이 사용됨에 주목하였다. 이는 강력한 적대감을 내포하고 있는 표현으로, 반란을 진압하는 데 참가하였다가 전사한 두 인물의 주변 인물들이 그들의 공적을 내세우려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9서당(九誓幢) 부대의 편성에 대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職官志) 무관(武官)조의 기사로, 이 기사에서 쓰인 '보덕성 백성'이라는 표현은 반란 이후 그들을 '백성'으로서 다시 포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686년 '고구려 사람'에 대한 '경관(京官)' 수여와 비신라인계 서당의 깃 색[衿色] 사용, 3무당(三武幢) 가운데 두 부대인 적금무당(赤衿武幢)·황금무당(黃衿武幢)의 편성 순서 등을 고려할 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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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보덕성에서의 반란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쓰인 다양한 표현을 되짚어 봄으로써 인간이 언어를 통해 어떻게 사건을 규정하여 나가는지에 대해 살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인간이 써 나가는 역사라는 개념을 살핌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줄 것이다.</description>
    <dc:date>2025-08-31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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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묘자료를 통해 본 전북 동부지역 역학관계</title>
    <link>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521</link>
    <description>Title: 분묘자료를 통해 본 전북 동부지역 역학관계
연구책임자: 전상학
Abstract: 전북 동부지역의 삼국시대 분묘자료를 수계별로 검토하여, 가야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진출과정을 살펴보았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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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분묘자료는 4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금강 수계권의 장수지역과 남강 수계권의 운봉고원에서 확인된다. 장수지역과 운봉고원 가야 세력은 6세기 전반까지 대규모의 고총을 조영하며 발전하였다. 섬진강 유역에서 조사된 가야계 석곽묘는 장수지역 또는 운봉고원에 자리한 가야와 관련된 것으로 이들 세력의 일시적인 진출이나 섬진강 유역 재지세력과의 교류 등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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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고분은 북쪽의 금강 수계권과 남쪽의 섬진강 수계권인 남원지역에서 주로 확인되었다. 금강 상류인 용담댐 일원에서 백제·가야·신라 분묘자료가 확인되는데, 늦어도 6세기 전반부터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장수 지역은 6세기 전반부터 가야고분에 백제토기 부장량이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 삼봉리고분군에서 횡혈식석실묘가 확인되어 일시적이지만 백제의 진출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운봉고원의 행정리고분군에서 5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석곽묘가 조사되었으나 연속성은 보이지 않으며, 이후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에서 백제의 영향을 받은 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되었다. 섬진강 중상류지역인 남원 사석리고분군과 초촌리고분군에서 5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되었다. 이중 초촌리고분군은 섬진강 유역에서 확인된 최대 규모의 백제 고분군으로 웅진기 이후 백제의 지방거점에 조영된 것으로 보여진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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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분은 금강수계권의 북쪽인 무주와 진안지역과 남강 수계권인 운봉고원에서 확인되었다. 전북 동부지역 고분에 신라토기가 유입되는 시기는 5세기 전반으로 신라의 직접적인 진출이 아닌 현지 세력과의 교류로 나타난다. 5세기 후반에 들어와 대차리고분군을 비롯한 신라 고분군이 조영되며, 장수지역은 6세기 후반 이후에 신라의 권역에 포함된 것으로 보여진다. 남강 수계권인 운봉고원의 봉대리고분군에서 가야와 신라 토기가 혼재되어 출토되었으며, 본격적인 신라 고분의 조영은 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시작된다. 가야세력의 중심고분군인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에 석실이 들어서고 고총 축조가 중단되는 시점은 대략 6세기 2/4분기 이후로 가야세력의 소멸과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는 일면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섬진강 수계권에서 신라 고분은 7세기 전후한 시기로 편년되는 남원 월평리 수월유적이 있는데, 신라의 서쪽 진출과 관련된 것으로 보여진다.</description>
    <dc:date>2025-08-31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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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남선의 『심춘순례』에 나타난 전북의 신화적 장소성과 민족주의적 상상</title>
    <link>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520</link>
    <description>Title: 최남선의 『심춘순례』에 나타난 전북의 신화적 장소성과 민족주의적 상상
연구책임자: 표정옥
Abstract: 본 연구는 최남선의 『심춘순례』를 중심으로 전북 지역이 조선 신화의 시원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당대 민족주의적 상상력이 장소성과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심춘순례』는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전북이라는 공간을 민족 정체성의 원형적 장소로 재구성하려는 문화정치적 기획으로 읽힌다. 본 논문은 먼저 전북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밝’과 ‘살’의 상징성과 광명사상을 검토하였다. 이 개념들은 최남선의 직접적 개념화는 아니지만, 전북의 모악산, 도솔천 등과 결합되며 태양 숭배와 생명력의 의미를 함축한다. 둘째, 『삼국유사』 속 진표율사, 최치원, 원효, 의상 등의 인물들이 전북의 지형과 어떻게 상징적으로 연결되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는 전북을 신화와 불교가 중첩된 성지로 해석하려는 최남선의 서사 구성 전략으로 이해된다. 셋째, 바리산, 곰소, 선돌, 범섬 등 전북의 자연지형을 신화적 시원의 장소로 설정하는 상상력을 고찰하였다. 이들 공간은 단군신화, 바리공주 설화, 미륵 신앙 등과 상징적으로 병치되어, 민족 기원의 장소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분석은 최남선의 해석이 실제 설화의 지역성과는 일정한 거리감을 지니고 있으며, 당대 민족주의 맥락 속 상징적 재배치임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심춘순례』를 통해 전북이 신화적 장소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통해, 장소성과 신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민족주의적 문화기획의 의미를 재고찰하였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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