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송병선의 자정노선(自靖路線)과 무주(茂朱) 서벽정(棲碧亭) 영건(營建)

Title
연재 송병선의 자정노선(自靖路線)과 무주(茂朱) 서벽정(棲碧亭) 영건(營建)
Other Titles
A Study on Yeonjae(淵齋) Song Byeong-seon(宋秉璿)’s Self-comfortism and Construction(營建) of Seobyeokjeong Pavilion(棲碧亭) in Mooju(茂朱)
연구책임자
김종수
키워드
송병선, 자정노선, 서벽정, 저술 활동, 연재학파
Issue Date
2023-08-31
Publisher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Citation
김종수. (2023). 연재 송병선의 자정노선(自靖路線)과 무주(茂朱) 서벽정(棲碧亭) 영건(營建). 전북학연구, 9, 29-60.
Series/Report no.
전북학연구;제9집
Abstract
조선 최후기인 헌종·고종 연간을 활동기로 삼았던 연재 송병선은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아우인 심석재 송병순과 더불어 근세 유학의 일파인 연재학파를 창시·공유한 거유이자 애국지사다. 그런데 연재학파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주로 송병선 1인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50세 이후로 이행한 자정노선에 대해서는 미처 연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상태다. 이에 금번 논의에서는 이른바 ‘포경입산(抱經入山)’으로 대변되는 송병선의 자정노선을 상징해 주는 전북 무주군에 소재한 서벽정을 전면에 내세운 연찬을 시도하게 되었다.

만동묘 훼철령에 뒤이은 1884년에 취해진 갑신변복령은 송병선의 인생 항로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송병선의 삶에서 갑신변복령과 그에 따른 고종의 미온적인 태도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산속의 은둔 생활을 통해서 유학적 진리[吾道]를 위호하기 위한 자정노선으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변수로 다가 섰다. 이에 송병선은 1885년에 회덕현을 떠나 옥천의 원계로 이거를 단행하였고, 이듬해인 1886년(51세)에 무주의 무이봉 아래에 강당형 건물인 서벽정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송병선이 택한 자정노선의 심화 국면을 상징하는 서벽정 영건은 예기치 못한 화재로 인해 1892년에 중건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지만, 독서와 강학·저술 활동 및 음풍영월로 점철된 자정노선은 득의한 결실로 이어지게 된다.

송병선은 서벽정에서 『근사속록』에 대한 교정 작업을 진행하였고, 주저인 『무계만집』과 『동감강목』을 완성함과 동시에, 『무계시첩』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같은 저술 활동에 병행하여 송병선은 아우인 송병순과 공동으로 춘추 강회를 개최하고, 계 조직을 통해서 학단을 이끌기도 하였다. 송병선이 서벽정에서 남긴 마지막 행적은 1903년(68세)에서 『송자대전·습유』를 정서(淨書)한 기록이나, 차후 송병순 주도하에 문인들에 의해 『연재집』의 간역(刊役)이 착수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송병선에 의한 서벽정 경영은 70세의 나이로 1905년에 순도(殉道)를 감행하기 이전 시기에 이행한 자정노선을 상징하는 역사적·문화적 공간임을 이해하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원계(遠溪) 경영(經營)과 자정노선(自靖路線)
3. 무주(茂朱) 서벽정 영건과 노선의 심화
4. 맺음말
참고문헌
URI
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150
ISSN
2713-5772
Appears in Collections:
전북학연구센터 > 전북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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