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세기 함안조씨 문중의 정주(定住) 아이콘 : 남원시 봉황대(鳳凰臺) · 정(亭)

Title
16~18세기 함안조씨 문중의 정주(定住) 아이콘 : 남원시 봉황대(鳳凰臺) · 정(亭)
연구책임자
김종수
Keywords
봉황대, 봉황정, 명암 전설, 함안조씨 제학공파, 아이콘, 계모임, 봉황대시집
Issue Date
2021-12-31
Publisher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Citation
김종수. (2021). 16~18세기 함안조씨 문중의 정주(定住) 아이콘 : 남원시 봉황대(鳳凰臺)·정(亭). 전북학연구, 4, 135-160.
Series/Report no.
전북학연구; 제4집
Abstract
남원시 대산면 죽곡마을에 소재한 봉황대는 유서 깊은 천혜의 자연적 상관물로, 특히 울음바위[鳴巖] 전설로 인하여 고려 말엽부터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조선시대 때 대곡방에 소속되었던 봉황대에 새겨진 암각화는 이 일대가 민초들이 생업을 유지하기에 매우 적합한 터전임을 시사해 준다. 차후 고려말에서 19세기 이전 시기에 이르기까지 봉황대는 이곳의 명암 전설이 발휘한 신비로운 예지력으로 인해 죽곡동의 영험한 명소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경상우도의 함양에서 죽곡동으로 이주한 함안조씨 제학공파의 파조인 율정 조종례와 그 후손들에 의해서, 봉황대와 명암은 특정한 문중과 결속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조종례를 위시한 이 일문의 문과·생원·진사시 합격 사실을 명암이 연속적으로 묵시해 보임으로써, 제학공파 일문의 성공적인 정착을 상징해 주는 아이콘으로 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신재 조림이 창작한 「명암운」에 하서 김인후가 차운시로 화답한 이래로, 후손들이 지은 일련의 차운시들은 이 문중의 대외적 영향력을 제고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자를 창건한 주체를 둘러싼 의론 또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로 제학공파 후손들의 관직 진출이 뜸해지면서, 봉황대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게 된다. 또한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중건·중수되었던 봉황정이 관심의 초점으로 부상하게 된 것도 봉황대 전설의 퇴각이라는 추이와 궤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1970년도에 이르러 봉황정을 모태로 하여 결성된 계모임과 이 조직의 주도적인 노력에 힘입어 발간된 「봉황대시집」은, 바야흐로 봉황정이 탈문중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서 주민 공동의 문화적 공간으로 탈태하였음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신호였다.
목차
1. 머리말
2. 율정(栗亭) 조종례(趙從禮)의 남원 이주
3. 제학공파(提學公派)의 정주(定住) 아이콘화
4. 봉황정 중건과 탈문중화 국면
5. 맺음말
URI
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815
ISSN
2713-5772
Appears in Collections:
전북학연구센터 > 전북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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