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40년대 익산문묘 예산의 식민지적 운용과 '동원과 전통'

Title
1930~40년대 익산문묘 예산의 식민지적 운용과 '동원과 전통'
연구책임자
설주희
키워드
일제강점기, 향교재산, 사회교화, 지역지배
Issue Date
2023-04-30
Publisher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Citation
설주희. (2023). 1930~40년대 익산문묘 예산의 식민지적 운용과 ‘동원된 전통’ . 전북학연구, 8, 81-107.
Series/Report no.
전북학연구; 제8집
Abstract
조선총독부는 식민지배정책을 조선 촌락까지 효율적으로 전파시키기 위해 각종 지역공동체와 사회단체를 활용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향교는 자연스럽게 식민권력의 통제권 안으로 포섭되었고, 식민권력은 향교를 통해 촌락 말단까지 식 민 이데올로기와 일본제국주의의 효용 가치를 홍보하였다. 본고에서는 이 점에 착 안하여 일제강점기 향교가 식민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활동한 실제 사례를 익산문 묘 예산 보고서를 통해 살펴보았다.
익산문묘 세입·세출 분석 결과 전통시대 지역민의 윤리적 소양과 교화, 성현에 대한 예를 집례하던 향교는 일제강점기 이후 그 운영 형태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향교 운영권 및 재산처분권이 지역 유림이 아닌 조선총독부 권한으로 이관되었고, 이로 인해 향교 활동 역시 관변적인 성향을 보였다. 전시체제기에 가까울수록 향교 의 식민지 동원 활동은 더욱 노골화 되었다.
익산문묘의 관변적 활동 양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지출 항목은 ‘교화비’와 ‘기부 및 보조금’이다. ‘교화비’는 지방개량비, 강연 및 강습회비, 선행자 표창비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모두 193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진 식민지배정책과 관련되어 전 시체제기 지역사회 동원에 그 목적이 있었다. ‘기부 및 보조금’ 지출의 특징은 ‘식 민지배 관련 단체 지원’과 ‘시찰(視察) 지원’이었는데 이 역시 시국 인식 및 전시체 제 동원을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전근대 향교는 지역민 교화와 향촌 교육을 중점으로 활동하였지만 근대에는 식 민지배체제에 예속되어 식민선전기관으로 전락하였다. 1930~40년대 익산문묘의 지역사회 활동 역시 외피만 ‘향교’라는 전통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 운영의 본질 은 근대 식민권력기구 형태와 동일하였다. 익산문묘는 전근대와 동일하게 ‘교화’를 표방하였지만 이 때의 교화는 근대 식민주의가 유입된 이전과 다른 형태의 교화였 고, 사회교화의 중요성은 일제 패망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강조되었다.
목차
1. 서론
2. 익산문묘 예산안의 구성
3. 향교재산의 식민지적 운용
4. 결론
URI
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973
ISSN
2713-5772
Appears in Collections:
전북학연구센터 > 전북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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