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위봉산성의 축성 배경과 성격을 기존의 ‘경기전 태조어진 이안(移安) 산성’ 또는 ‘대외 관방거점’으로 환원하기보다, “전시 수도 전주 방어체제” 속에서의 기능으로 재위치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호란 이후 형성된 “도성 수비 불가―후방 보장”이라는 전략 전환과, 삼번의 난 전후 대외환경 속에서 전주를 축으로 한 방어 구상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실록·비변사등록·읍지류 등 자료를 통해 전시 운영의 실제를 재구성하였다.
전주의 방어는 전주부성 ‘단일축’이 아니라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설계되었고, 그 중 위봉산성은 행궁·군기고·군향창을 갖춘 후방 방어의 핵으로서 전주부성의 취약을 보완하였다. 특히 삼번의 난 등 국제정세의 위기 속에서 위봉산성은 천연의 요새로서 해상?육상 피난의 종착지이자 국왕의 최후 피난처로 구축되었으며, 고군산진 등 서해 수군 거점의 강화와 결합해 후방 방어체제를 입체화하였다. 나아가 숙종 8년(1682) 위봉산성 축성 완료를 전후해 전라 수군 체계가 재편되는 등 산성 보장체제와 해상 방어체제가 상호 연동되는 구조가 확인된다.
결론적으로 위봉산성 축성과 전시 수도 전주의 방어체계 구축은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의 경험 축적 위에서 삼번의 난과 국내 정치, 경신대기근 등 요인들이 중첩된 조건 속에 마련된 국가적 대비책이었으며, 조선후기 후방 보장 전략이 “지휘·상징의 보전과 이동”을 핵심 원리로 삼아 공간적으로 구현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전시수도 전주와 보장 체제의 역사적 전개
3. 삼번의 난 전후 대외 정세와 조선의 대응
4. 후방 방어책의 구상과 전시 수도 전주
5.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