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권력 투쟁과 전라북도 지역 질서의 재구성: 남원사건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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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송정현-
dc.date.accessioned2026-09-18T16:06:57Z-
dc.date.available2026-09-18T16:06:57Z-
dc.date.issued2025-12-31-
dc.identifier.citation송정현. (2025). 해방 이후 권력 투쟁과 전라북도 지역 질서의 재구성: 남원사건을 중심으로. 전북학연구, 16, 177-198.ko_KR
dc.identifier.issn2713-5772-
dc.identifier.otherJJS1607-
dc.identifier.urihttp://repository.jthink.kr/handle/2016.oak/1633-
dc.description.abstract본 연구는 해방 직후 전라북도 사회의 권력 구조 재편 과정을 1945년 11월 발생한 남원사건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해방 직후 미군은 남한 점령과 군정 수립을 추진하였으나, 지역마다 상이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권력 질서를 마주하게 되었다. 전라북도는 곡창지대로서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핵심 지역이었으며, 빈번한 소작쟁의와 농민들의 사회적 갈등으로 좌익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조건은 해방 이후 권력 공백기에 지역 사회 권력 질서의 재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남원사건은 미군정과 인민위원회 간의 갈등이 폭발적으로 표출된 사례였다. 미군정은 인민위원회의 행정·치안 기능을 해체하고 적산 처리 권한을 장악하려 하였고, 이에 반발한 주민 시위 과정에서 미군의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사건의 배경에는 단순한 좌우 대립뿐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 적산 처리 문제, 친일 청산 요구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사건 이후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경찰과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통치 기반을 강화하였으며, 친일 협력 세력의 재등장과 좌우 대립의 격화를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남원사건은 해방 직후 전라북도 사회의 권력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분기점이자,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 재편의 특수성과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본 연구는 남원사건을 통해 중앙 정치 구도에만 국한되지 않는 지역 사회 내부의 권력 관계와 변화의 중요성을 밝힘으로써 해방 공간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ko_KR
dc.description.tableofcontents국문초록 1. 서론 2. 미군의 전라북도 배치와 통치 기반 형성 3. 남원사건(1945.11.15)과 지역사회 질서의 재편 4. 결론 참고문헌-
dc.publisher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ko_KR
dc.relation.ispartofseries전북학연구;제16집-
dc.title해방 이후 권력 투쟁과 전라북도 지역 질서의 재구성: 남원사건을 중심으로ko_KR
dc.typeArticleko_KR
dc.subject.keyword미군정기ko_KR
dc.subject.keyword전라북도ko_KR
dc.subject.keyword남원사건ko_KR
dc.subject.keyword인민위원회ko_KR
dc.subject.keyword적산k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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